요즘 영우와 함께 잠을 자니까 아침 일찍 눈이 뜨인다. 덕분에 밀린 육아일기를 다 썼다. 육아일기를 다 쓰고 나면 남는 시간엔 영어공부를 할까, 일어공부를 할까, 그도 아니면 책을 읽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남는 시간이 생기면 웹툰을 보더라. 수지형이 추천해준 소녀소녀한 웹툰을 정주행했고, 강풀의 새 웹툰을 정주행했다. 그리고 뭐 볼만한게 없을까 평점순위를 살펴보고 있다.
얼마 전 신랑이 던져준 트윗계정 하나를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페미니스트인 것 같은데, 대체로 그의 트윗은 리트윗으로 채워져있다. 그가 리트윗한 트친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여자로서 이 사회를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것인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너무나 생경했다.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내 주위의 누군가가 경험하고 있을것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 읽기 시작한 책에서는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조차 '보통의 경험'이라는 표현을 하였는데, 성차별은 얼마나 일상적인 일일 것인가. 지인의 빙모상을 알지도 못하고 지나갔는데, '장모님이기도 하고' 해서 연락 안했다라는 표현에 그런 말이 어딨냐고 발끈했지만, 무남독녀인 후배의 부친상에 손님이 너무 없는 것을 보고는 집안에 남자가 없어서 걱정하는 친구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는 모순적이다.
내가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들이 함부로 대하기는 애매한 학력과 경력 덕분에 드러내놓고 차별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차별 받기 전에 내가 먼저 뛰쳐나가서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잘나서가 아닌데,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일상에 내 일 아니라고, 또는 내가 스스로 헤쳐나갔다고, 모른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4세의 엄마인 내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트윗에서 시작되어 강경화까지 이어지는 여성의 소리에 마음이 복잡하다. 정리도 안되서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으니 여기서 마무리.
휴직 기간에 만났던 사람들과 다시 한 번씩 만날 일이 생겼다. 생각난 김에 만나서 나누었던 이야기들 중에 기억해두어야지 싶었던 내용 몇 가지를 적어두어야겠다.
벌써 4학년의 학부형인 후배는 영우를 예민한 아이로 기억하고 있다. 6개월 즈음의 영우를 봤었는데 실제로 영우가 예민하기도 했고, 후배의 아이와 비슷한 성향이었기 때문에 가끔씩 영우의 근황을 물으며 역시 예민하다고 평가하곤 했다. 영우가 예민하긴 하지만 자존감이 높고 즐거운 아이가 되었다고, 후배의 아이는 그렇지 않냐고 했더니 그럴수가 없단다. 엄마가 키우는 예민한 아이는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혼날 일 밖에 없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아질 수가 없고, 즐거울 수가 없단다. 할머니가 키울 때는 예민한 것도 다 받아줄 수 있어서 자존감 높은 성향이 발현될 수 있지만 엄마가 키울 때는 혼나는 일이 너무 많을 것이라 했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느낀 바가 컸지만 요즘 영우는 나한테 많이 혼나고 가끔 눈치도 본다.
전 직장의 이사님께서는 부모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양과 질에 대해 말씀하시며, 학문적으로도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질을 어떻게 평가하는걸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질이 결정되는 시간이 언제인지에 대해 알려주셨다. 바로 퇴근 후 아이와 만나는 그 순간이다. 회사일에 지친 상태로 아이를 픽업하러 가서 힘든 얼굴로 아이를 만나면 이후에 아무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고 하더라도 힘든 시간, 질이 좋지 않은 시간이 된다고 한다. 아침에 헤어지고 몇 시간만에 처음 다시 보는데 힘든 얼굴을 보면, 아이 입장에서는 회사 때문에 부모님이 힘들지 나 때문이 아니야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걱정을 하거나 부모님 눈치를 살피게 되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고 한다. 역시나 아이 입장에서의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도움이 되는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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