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9일 목요일

1060일 킥보드 설움

동생의 증언에 따르면, 영우는 오늘 킥보드 때문에 울었다고 한다. 형아들이 킥보드를 타고 노는데 같은 반 친구인 지민이는 타게 해주고 영우는 못타게 해서 억울해서 울었나보다. 
할머니가 예전에 날씨 따뜻하면 킥보드 사준댔는데, 오늘 영우가 날씨 따뜻하냐고 물으니 따뜻하다고 했으면서, 할머니가 날씨 따뜻한데 킥보드 안사준다고, 거짓말했다고 이모한테 일렀나보다. 억울한 표정 가득, 울먹울먹한 표정으로 설명을 하길래 동생이 옷이 얇아져야 따뜻한거라고, 두꺼운 잠바 안 입고 얇은 옷 입으면 사줄거라고 이야기했더니 수긍했단다. 
이틀 전 어린이집에서 야외활동 간 곳에도 킥보드가 있어서, 씽씽 잘 달렸다고 하던데 매일매일 타고싶나보다. 그 억울한 표정과 울먹울먹한 표정 뭔지 알 거 같아서 너무 웃기다. 따뜻한 봄이 오면 킥보드 많이 타자 영우야.

2017년 1월 16일 월요일

12월의 문화생활

에르메스, 파리지앵의 산책
한동안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뜨겁게 달구었던 에르메스의 전시. 사실 전시보다는 디뮤지엄에 생겼다는 아이엠버거가 더 궁금해서 간거였는데, 휴직 후 첫 평일 일정이라 한가한 전시장과 식당을 기대했으나 웬걸. 아이엠버거도 30분 대기, 에르메스 전시도 입장을 위해 4명씩 줄서서 대기, 평일에도 핫 플레이스는 핫핫핫하구나.
에르메스 전시에 대한 온라인상의 체감은 서울 사람 중에 안 가본 사람이 없는 것 같았는데 정작 나는 큰 감흥이 없었다. 파리에 가본 적이 없어서인가 에르메스에도, 파리지앵의 산책이란 컨셉에도 와닿는게 없었다. (아이엠버거는 아주 맛있었다.) 그렇지만 사진 한 장 투척.
서울시향
서울시향의 브람스 교향곡 1번과 김한과의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이번 주에는 무슨 공연이 있나 살펴보다가 발견한 공연인데, 아는 곡만 연주해주는 공연은 흔치 않으므로 덥썩 예매했다. 게다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실연으로 들을 수 있다니 기대하지 않을수가 없다. 김한은 차세대 클라리넷 연주자인 것 같은데 특유의 몸동작 때문에 몰입이 잘 안되었으나 연주는 괜찮았다. 앵콜곡은 클라리넷으로 이런 곡도 연주할 수 있다는, 꽤나 기교가 필요한 곡을 연주해서 관객들의 호응이 엄청났다. 그런 기교 아니더라도 클라리넷의 부드럽고 따뜻한 소리가 참 좋았다.


1056일 (원격) 책 읽어주세요

영우랑 화상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한 발로 서며 영우 잘하지 자랑을 한다. 이에 질세라, 요즘 요가 수업을 듣는 나는 나무자세를 보여주며 엄마는 이것도 할 수 있다 자랑을 한다. 영우도 따라 하겠다며 두 손을 머리 위로 합장하고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 잠시 비틀거리다가, 체육시간에 배운 것으로 추정되는 양 손을 열중쉬어하고 한쪽 다리를 들어올리는 자세로 자랑을 마무리하였다.
아이패드 카메라를 앞뒤 전환해가며 동작을 보여주니 신이 났는지 또 다른거 보여달라고 한다. 문득 영우 책 정리해 놓은 것이 생각나서 자리를 옮겨 책장을 쭉 훑어주었다. 읽어주세요 하길래 나도 내용이 궁금했던 바바파파 책을 꺼내었다. 이종사촌에게서 유아용품, 옷, 책, 장난감을 정말 많이 물려받아서 나도 조카에게 바바파파 전집을 선물하였었는데 그 중에 몇 권이 다시 영우에게 돌아왔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내용도 꽤나 재밌다. 어떤 모양으로도 변신하는 바바파파네 가족 이야기, 어렸을 적 TV로 정말 재미있게 봤었지.
원격으로 카메라 비춰가며 읽어주는데도 영우는 꽤 집중해서 보더니만 또 읽어달라고 한다. 핑크색 책을 읽어달라고 해서 골라냈더니 그 핑크색 말고 핫핑크색으로 읽어달라고 한다. 아이들의 책은 표지 색깔도 중요한 것이로군. 또 한 권 읽어주고 그만 읽으려고 했으나 또또 읽어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고른 책은 한자 사전. 영우야 이 책은 한자 공부하는거라 어려울 거 같은데라고 했지만 읽어달란다. 첫 페이지는 노래 가 '歌', 노래 가라는 소리를 듣더니 영우는 노래하겠다며 피아노 앞으로 노래하러 가버렸다. 이렇게 원격 책읽기는 끝.

2017년 1월 13일 금요일

1053일 철봉

영우가 제일 좋아하는 체육시간이 있는 목요일, 어린이집에서 올려준 사진을 보니 철봉을 했나보다. 지난 번 식당 놀이방에 갔을 때 슬라이더를 제법 잘 잡고 오래 버티길래 팔 힘이 좀 생겼나보다 생각하긴 했는데, 철봉에도 잘 매달려있다. 팔과 다리를 걸어 거꾸로 매달려보기도 하고, 친구랑 누가 오래 매달려있나 시합도 하고, 사진의 표정을 보니 정말 신나하는 것 같다. 철봉에 매달린 사진을 보고 앞으로 노는게 더 거칠어질까봐 걱정하는건 그저 기우이길.

1050일 머리카락

유난히 머리카락을 싫어하는 영우는 바닥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빨리 치워달라고 '머리카락, 머리카락'을 외친다. 머리카락이 손에 묻기라도 하면 질색을 하며 빨리 떼어 달라고 '머리카락, 머리카락'을 외친다.
통화를 하는 중에 또 머리카락이 손에 붙은 것을 발견했나보다. 머리카락을 외치는데 할아버지가 TV 보시느라 못 알아채자 '뱀, 뱀, 뱀' 하면서 손을 쭉 뻗어 할아버지 앞으로 달려나간다. 뱀이라니, 엄청 긴 머리카락인가보구나, 나의 머리카락을 흘리고 왔나보구나 싶어서 '영우야 엄마 머리카락인가보다, 미안해' 했더니 '엄마 머리 자르고 와' 한다. 헉, 그렇게나 싫은 것이냐.

1049일 다시 서울로

일주일이 휙 가버렸다. 시댁 모임이 있어서 아침을 먹고 일찍 나서야했는데, 일주일동안 같이 지냈으니 영우도 좀 아쉬워하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쿨한 영우, 엄마아빠 오늘은 일찍 갈게 했더니 '응, 안녕'이란다. 이렇게 쿨한 영우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엄마아빠랑 서울에서 살면 좋겠지?에 대한 답이다. 몇 번을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거나 화제를 돌려버린다. 이번에도 물어봤는데 대답을 않자 신랑이 아직 좋을지 안 좋을지 잘 모르겠지? 했더니 긍정한다. 그러게 영우도 우리랑 사는게 걱정되겠지.
시댁에서 영우랑 화상통화를 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와 고모, 고모부께 안녕하세요 인사도 잘하고 사랑해요도 잘한다. 식사하면서 지난 11월에 영우가 큰고모 내외 이름을 잠깐 듣고도 기억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화상통화하면서 고모부 이름을 이야기해서 또 모두가 깜짝 놀랐다. 특히나 고모부께서 아주 기뻐하셨다. 나중에 용돈 두둑히 받을 수 있을만큼 점수를 딴 듯.

1048일 업된 영우

요즘은 트렘폴린에서 많이 뛰지 않는 것 같았는데 웬일인지 방방방방 신이 났다. 너무 업되서 뛴다 싶더니 동물농장 만든다고 가져다 놓은 블럭 박스로 머리가 빨려들어갔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손을 쓸 틈이 없었는데, 블럭 박스 안에 블럭이 많이 들어있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엄청 아팠을듯. 영우는 울지는 않았다. 좀 놀란 것 같기는 한데 스스로 업되서 방방거리다가 벌어진 일이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안 아픈척을 했다.
방방거림이 끝난 후에는 안아달라고 난리더니 높은 곳에 숨겨두었던 찰흙놀이를 발견하였다. 오랜만이니 같이 해보자 싶어 꺼내줬는데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잘 뭉쳐지지 않고 바스러지는 것도 있고 말라버린 것도 있다. 부스러기 떨어지니 한 자리에서 놀았으면 좋겠는데 업된 영우가 그럴 리가 있나, 온 거실에 찰흙 부스러기를 떨어뜨리고 다닌다.
그렇게 노느라 낮잠도 안 자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성민이가 놀러왔다. 성민이랑 뛰어다니고, 주방놀이하고, 또 방방이도 타고, 그러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역시 간식을 덜 먹이면 밥을 잘 먹고, 잠이 올 때까지 안 재우면 알아서 쉽게 잠이 드는거로군.
한시간 여 자고 일어나서는 바구니로 얼굴을 가리고 '성민이야?' 해보란다. '성민이야?' 하면 바구니를 내려서 얼굴을 보여주는데 '영우네~' 해주면 꺄르르 넘어간다. 몇 번을 해도 재미있는지 수십번씩 바구니를 올리고 내리더니 다음날까지도 이 놀이가 이어진다. 성민이인지 영우인지 맞추기 놀이를 하면서 업되어 있다가 집에 가는 성민이 잘 가라고 안아준다는게 그만 기우뚱 넘어져버렸다. 성민이 넘어진 곳에 뾰족한 물체는 없어 다행이었다. 온종일 업된 영우였는데 큰 사고 없이 하루를 마무리해서 또 다행이었다.

2017년 1월 9일 월요일

1047일 아빠 오는 날

신랑이 출근을 하지 않고 일찍 내려와서 같이 하원시키러 갔다. 영우는 아빠를 보고는 흥이 폭발하여 어깨를 들썩인다. 선생님이 영우 서울 가면 보고싶어서 어떡하지~라며 우는 흉내를 냈더니 영우가 '용감하게 참아야돼' 하더란다. 엄마아빠도 영우가 보고싶으면 용감하게 참을게!
신랑이 영우에게 엄마 힘들게 안했냐고 물었더니 자신있게 응이라고 대답한다. 화나게 했잖아라고 신랑한테 이르니까 신랑이 다시 영우한테 물어본다. 엄마가 화나게 했다는데 왜 화나게 했어? 했더니 '화장실에 신발 던져서'란다. 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구나.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건 아니겠지;
스케치북을 다 써서 하원길에 사왔다. 새 스케치북은 핑크색 싸인펜으로 시작한다. 싸인펜 뚜껑을 여닫으면서 영우 손도 같이 핑크빛이 되어갔지만 화를 내지 않고 놀이가 끝난 후에 같이 손을 씻어주었다. 한 번 비누칠로는 잘 지워지지 않아서 싸인펜은 비누로 잘 안지워진다고 했더니 '그러면 할 수 없지'란다. 쿨한 녀석.
신랑이랑 같이 놀던 중에 영우가 클래쉬 오브 클랜을 하였는데 상자를 오픈하기 위해 보석을 써버렸다. 신랑이 으앗 보석 쓰면 안되는데 하고 소리를 지르니 움찔움찔하던 영우가 울기 시작한다. 얼마나 서럽게 오랫동안 울던지, 부모님이 왜 우는 거냐고 물어보시는데 이유를 얘기하지도 못하고. 그간 내가 화를 낼 때는 살짝 쫄기만 하더니 신랑이 보석 쓰면 안되는데라고 했을 뿐인데(사실 소리를 질렀다고 하기도 뭐하다) 아빠의 소중한 것을 망쳤다는 것을 느낀 것일까, 아무튼 당혹스러웠다. 신랑도 그게 뭐라고, 영우를 울리다니 왜그랬을까 반성반성. 그러나 내가 열심히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의 보석은 소중한 것이지. 난 이해할게.

1046일 등원일

영우가 어린이집에 가는 날 같이 있어본 적이 없어서 처음으로 영우가 등원하는 날의 일상을 보게 되었다. 8시 10분쯤 일어난 영우는 잠깐 놀면서 잠을 깬 후 아침밥을 먹기 시작한다. 요즘은 밥 먹는데 한 시간씩 걸리기 때문에 엄마가 일부러 잘 먹는 카레를 준비해놓으셨다. 덕분에 30분만에 아침밥을 다 먹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바쁜 아침이다. 얼굴 닦아주고, 소변 누이고, 옷 갈아입히고, 외투 입히고, 쉼없이 움직이면 겨우겨우 9시 30분까지 시간을 맞출 수 있다.
하원하는 영우를 데리러 간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처음으로 등원을 시켰는데, 어린이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빠이빠이를 하며 뛰어들어가 놀고 싶어한다. 선생님께서도 엄마랑 같이 왔는데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울지 않고 잘 헤어진다며 기특하다고 하신다. 하원할 때에 데리러 갔더니 선생님 말씀이 오늘은 놀면서도 집에 빨리 가고 싶어요, 집에 가면 엄마가 있어요 하더란다. 고마워 영우야.
아침에 영우는 '엄마 뭐한다고 카톡카톡해?'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카톡을 거의 안하는데, 라인도 알람을 거의 꺼놓았는데 카톡카톡이 무엇을 의미할까? 언제?라고 물었더니 '혼자'란다. 엄마 혼자 카톡카톡해서 심심했어? 했더니 '응'이란다.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핸드폰을 보고 있을 때가 많은가보다. 영우 심심하지 않게 핸드폰은 멀리 두어야겠다.
매번 영우한테 잘해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저녁에 또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양치를 시키고 손발을 다 씻긴 후에 욕실 밖으로 내보냈는데 잠깐 한눈 파는 사이에 '할아버지 신발 멀리 던질거야' 하면서 욕실 슬리퍼 바닥을 잡고 휙 던진 것이다. 힘들게 씻기고 내보냈는데 다시 손 닦여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꽥! 손발을 씻기는게 뭐 그리 힘든가 싶겠지만, 영우는 비누칠을 두세번씩 하는데다 손에 물만 닿으면 첨벙첨벙거려서 옷을 버릴 확률이 높다. 집이 주택이라 욕실이 춥기도 하고 온수도 아파트처럼 바로 콸콸 쏟아지는게 아니라서 감기 걸릴까 걱정도 된다. 뭐 다 핑계고, 그냥 다시 씻기기가 귀찮았던거겠지. 이렇게 또 무서운 소리를 내는 엄마가 되었다.

2017년 1월 5일 목요일

1045일 방학 마지막 날

영우랑 몬테소리 카드로 한글 맞추기 놀이를 하였다. 처음엔 공부로 시작하였다. 영우가 사랑해요를 받아적을 수 있어서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며칠 전 이 카드를 갖고 논 후 자석 칠판에 '나비'라고 붙였기 때문에 한글을 어느정도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림을 보고 단어를 찾는 카드인데, 배 그림을 보여주면서 비읍과 사랑해 할 때의 애를 찾으라고 하니 사랑해 사랑해를 계속 외친다. 그림과 단어가 함께 있는 카드를 보여주면서 똑같은 글자를 맞추라고 하니 그건 잘 하고 재미있어한다.
막내 동생이 놀러와서 함께 가베로 알파벳을 만들었다. 영우가 알파벳은 꽤 오래전부터 읽을 수 있었고, 단어도 잘 맞추어서 잘 만들어낼 줄 알았는데 몇몇 친숙한 단어 말고는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감을 못잡는다. 한글 맞추기 때에도 느낀건데 아직은 단어를 그림처럼 인식하고 있어서 우리가 알려주는 방식으로는 학습이 잘 안되는 것 같다. 영우를 더 자주 보는 동생도 영우가 자음과 모음 조합을 가르치면 짜증을 낸다며 통글자를 가르쳐주는 방식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동생의 추천으로 미스터피자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씬피자를 몇 번 먹어본 적은 있지만 잘 먹을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는데 웬걸, 한 조각을 거의 다 먹었다! 심지어 토핑되어 있는 올리브도 먹어보겠다고 한다. 맛이 이상하다고 말은 했으나 뱉어내지 않고 끝까지 먹었다. 방울토마토를 몇 번이나 더 먹겠다고 해서 20개 이상은 먹었을 것이다. 요거트와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씨리얼류의 과자와 나초, 비스킷이 있었는데 과자도 아주 잘 먹었다. 이런 감동적인 외식을 하다니, 심지어 뛰어다니거나 하는 일도 없이 얌전히 잘 먹었다.
배불리 먹고 돌아오는 길에 유모차에서 잠이 든 영우 덕분에 동생과 카페에서 한 시간여 수다 떨 시간도 생겼다. 신랑이 영우의 일상을 궁금해 할까봐 실시간으로 사진을 계속 올려주기도 했다. 영우는 라인 스티커의 매력에 푹 빠져서 요며칠간 아빠한테 뭐 보낼래 하며 스티커를 계속 보냈었는데 이 날은 음성메시지 전송의 매력에 푹 빠졌다. 한 번 보여줬을 뿐인데 지가 녹음을 해서 계속 전송을 한다. 덕분에 아빠는 2초짜리 음성메시지 폭탄을 받았다.
저녁도 잘 먹고, 내내 잘 놀고, 영우는 이쁜 짓을 많이 했다. 내일 어린이집에 가야하니 늦잠 자지 않도록 일찍 자야하는데 방학 내내 늦게 잤으니 자고싶을 리가 없지. 결국 영우한테 무서운 목소리로 큰소리를 냈다. 분위기 파악 제대로 했는지 방으로 총총 걸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목소리로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들어간다. 같이 살게 되면 영우는 매일 나의 무서운 목소리를 듣게 되겠지. ㅜㅜ

1044일 이모네 집

엄마랑 막내동생이랑 영우랑 둘째네로 총출동.
영우는 성민이의 장난감들을 갖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와중에도 성민이랑 틈틈이(?) 놀아주는데 참 보기가 좋다. 아직 힘 조절이 잘 안되서 성민이는 괴로울수도 있겠지만 같이 무언가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흐뭇하다.
미끄럼틀 아래에 기어들어가기도 하고, 미끄럼틀 위에 같이 올라가기도 하고, 작은 박스가 무대라며 둘이 같이 올라가 춤을 추기도 하고, 목욕통을 갖고 와서 목욜놀이를 하기도 하고, 목욕통을 머리에 쓰고 깔깔거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장 신나는건 몸으로 뒹굴며 노는건데, 사실 보고있으면 성민이가 다칠까봐 좀 불안하긴 하다. 그러나 지난번 식당 놀이방에서 형아들이 영우에게 과격하게 밀어내고 올라타고 했을 때 위험해 보이지만 영우가 엄청 좋아했던 것처럼 영우뿐 아니라 성민이도 꽤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형제들간의 몸싸움이 우애를 쌓는데 꽤나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영우는 4살이 된 것이 아주 좋은 모양이다. 3살 형아보다 4살 형아가 더 멋지다고 이야기하고, 조금만 더 지나면 5살이 되는거냐고도 물어본다. 이제 영우는 크니까, 그때는 애기였으니까, 성민이는 애기니까 라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어른들은 나이 드는게 싫은데 영우는 나이 먹는게 신날 때구나.
돌아오는 길에 또 잠이 든 영우는 전날 못 잔 낮잠을 보충하는지 2시간여 자고 활력을 되찾았다. 같이 불을 끄러 다니고, 4살이 된 자동차들 생일 축하를 해주고, 동물농장을 보수하고, 알에서 깨어나러 가야겠단다. 그렇게 열심히 놀아주고 있는데 영우가 나를 보며 '힘들지?' 한다. 거기다 대고 나는 또 '응 힘들다' 한다. 힘들지만 엄마가 최선을 다해 놀아주고 있다 영우야.

1043일 백화점 나들이

대구에 신세계 백화점이 오픈했다. 센텀시티점보다 더 크다는 이야기도 있고, 전국 맛집도 많이 들어와 있고 해서, 영우와 막내동생과 새해 첫 영업일에 방문을 해보았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아 백화점은 항상 사람이 많은 곳이던가, 이런 혼잡함은 적응이 잘 안된다.
7층 장난감 코너는 체험도 많이 해볼 수 있게 되어 있고, 어른들도 좋아할만한 레고나 스타워즈, 마블 히어로즈 시리즈도 많아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동생 말로는 토이저러스보다 더 잘해놓았다고 한다. 타요 트랙세트에 푹 빠진 영우를 데리고 밥 먹으러 갔더니 오마이갓, 식당마다 줄이 길다. 영우가 오전 간식도 안 먹고 나온 탓에 배고플 것 같아 가장 대기가 짧은 떡볶이집;;에서 떡볶이와 주먹밥을 시켰다. 떡볶이를 파는 집이지만 그 언젠가 가로수길에서 벤츠가 몇 대나 주차되어 있던 것을 보고 깜놀했던 바로 그 집이다. 떡볶이를 먹여보는데는 실패했지만 주먹밥은 세 개나 잘 먹은 영우.
영우 때문에 제대로 구경도 못하는게 왠지 미안해서 7층의 키즈카페에 가기로 했다. 키즈카페에 놀이 선생님이 있어서 엄마들이 편하다는 후기를 본 터라, 동생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그러나 카페는 테이블이 몇 개 없어서 겨우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커피는 맛이 없었다. 놀이 선생님이 있기는 하지만 영우는 너무 어려서 큰 아이들에게 치일 수 밖에 없다. 엄마를 계속 찾아대는 통에 따라다니느라 키즈카페에 온 보람이 없었다. 영우가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물을 찾지도 않고 나도 물을 수시로 챙겨줘야 하는걸 몰라서 영우가 입술에 계속 침을 묻히며 빤 모양인데, 빨갛게 입술이 터서 엄마한테 혼났다. 몇 장의 이쁜 사진들은 얻었으나 백화점 5층에서 잠든 영우를 안고 오느라 힘들었다. 이럴까봐 유모차를 빌렸는데 대구는 아직 유모차에 대한 매너가 부족하므로 엘리베이터를 타는게 정말 힘들어 일찌감치 반납했다.
키즈카페에서 묻혀왔을 먼지와 세균이 너무 찝찝해서 옷을 벗기다가 영우가 깨버렸는데 다행히 별로 울지도 않고 우유를 찾는다. 그래, 엄청 뛰어놀았는데 간식을 못먹었으니 배가 고프고 목도 마르겠지. 신랑이 뭐하고 노는지 궁금해하는데 영우가 폰을 갖고 노느라 대답할 틈이 없다. 전시회 정보를 알려주고 무료/할인 티켓을 나눠주는 앱이 있는데 각 전시마다 신청자들의 데모 정보를 인포그래픽으로 보여주나보다. 영우가 어제 성별 그래픽을 보고 있는건 봤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었다. 그런데 그걸 찾아달라고 하더니만 엄마는 모르겠다고 하니 그 앱을 찾아 버튼을 몇 번 눌러 보고싶었던 그 그래픽을 찾아낸다. '우와~ 깜짝이야, 이걸 어떻게 찾았어?' 했더니 기분이 좋았는지 영우가 다시 할테니 우와 깜짝이야를 해달란다. 거짓말 안보태고 15번은 한 것 같다. 우와, 잠든 아이 안고 걷는 것만큼 힘들다.
저녁에는 아빠가 딸기를 사오셨는데 엄청 먹고 싶은지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치카치카 안했으니까 딸기 먹을래요'라고 외친다. 그리고 정말 딸기를 절반 이상 먹어버렸다. 이런 꼬맹이도 맛있는게 뭔지는 아는구나.
낮잠을 30분도 못 잤을텐데 열시 반까지 업되서 안잔다. 전날에 이어 또 출근 안하냐고 물어본다. 엄마 출근하면 좋겠냐니깐 그렇댄다. 끄응. 영우가 방학이니까 휴가 낸거라고, 지난 여름 방학때 서울 왔을때도 엄마 휴가내고 영우랑 놀았잖아 라고 대답하긴 했는데 구차하다. 열시 반에 그림 그리고 싶다고 엉엉 울다가 결국 할머니 손에 끌려갔는데 참으로 에너제틱하다.

1042일 2017년

2017년이 되었지만 크게 달라지는 일상은 없는 법. 아침에 일어난 영우가 우리 방으로 달려와서 손가락을 네 개 펴며 '네살이예요'한 것을 시작으로 2017년을 맞았다.
요즘 영우는 메모장을 열어서 타이핑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이 날은 라인으로 '사랑해요 ♥♥'라는 메시지가 왔다. 당연히 영우가 말한 것을 신랑이 타이핑했을거라 생각했는데 신랑이 '시옷, 아, 리을,..' 이렇게 불러주고 영우가 자판을 찾아서 하나하나 타이핑했다고 한다. 아 이런 감동이~!
영우가 어린이집 방학을 맞이하여 숙제를 받아왔다. 바로 요리하는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 내가 받은 숙제라면 무엇을 할지 엄두도 안났을 거 같은데 엄마가 호박전과 고구마전을 만드는데 영우에게 미션을 주셨다. 호박에 밀가루를 묻히는 것과, 반죽에 고구마를 넣어서 잘 묻힌 후 후라이팬에 넣는 것. 난장판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영우는 집중해서 밀가루를 잘 묻혀서 주방이 많이 더러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고구마를 반죽에 넣을 때 그 많은 고구마를 전부 젓가락으로 담아냈다. 그렇게 미션수행과 인증샷 완성. 역시 전은 따뜻하게 먹는 것이 진리.
영우 방학이라 나는 대구에서 일주일간 지낼 예정이다. 신랑은 올라가고 나는 안간다고 하니까 영우가 '왜 출근 안해요?'라고 물어본다. 어, 그러게, 당황해서 제대로 답변도 못했다. 이제 4살 된 꼬맹이가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거니?
색연필을 꺼내서 노는데 여러개의 색연필로 원기둥을 만들고, 가운데 하나를 뽑아올려서 우유에 빨대 꽂은거라고 하면서 마시는 흉내를 냈다. 영우 한 번 나 한 번, 번갈아가며 우유를 마시고 있는데 색연필이 흐트러져서 '어, 우유가 쏟아지려고 해 어떡하지' 걱정하는 흉내를 내자 '괜찮아 우유 아니니까'란다. 시크한 녀석, 난 지금까지 뭘 한거지 자괴감이 든다.

1041일 심부름

A형 독감에 대한 공포로 외부출입을 자제하고 있는 중이다. 영우는 지난 주 아침부터 오늘 우리 어디가? 아빠 차 타고 어디가? 라고 물어보지만 못들은체 하고 있다. 영우야, 엄마아빠가 귀찮아서 그러는게 절대 아니란다. 이게 다 독감 때문이야.
오후에 갑자기 신랑이 몸이 안좋아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체온을 재보자고 했다. 영우한테 체온계 좀 갖고 오라고 하니 서랍에서 꺼내온다. 심지어 아빠 귀에 대고 체온을 재보기까지 한다. 정상이니 다시 갖다놓으라고 했더니 다시 갖다놓는다. 이제 제법 심부름을 시킬만하구나!

1040일 방학 첫날

어린이집 방학이 시작이다. 어린이집에 안가는 것을 안 영우는 '오늘은 뭐하고 놀지?' 하더란다. 우리가 도착해보니 기차놀이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 기차놀이 세트를 꺼내서 노는데 예전과는 또 다르게, 긴~ 기차를 만들어서 직접 운전을 하며 논다.
영우랑 아이패드를 보다가 어릴 때, 그러니까 6개월도 되지 않은 시절의 셀카를 보게 되었다. 그 사진이 웃긴 것은 영우가 내 품에 안긴 채 신랑 얼굴에 팔을 뻗어보는데 정말 팔이 짧다. 영우도 그 사진이 웃긴지 자기도 한 번 해보겠단다. 내 품에 안겨 신랑 뺨에 손을 대고는 셀카를 찍었다. 깔깔깔, 이런 사진들이 꾸준히 유행하는데 트렌디한 녀석.
간식으로 견과를 먹는다. 혼자서 다 먹으려고 하길래 신랑이 아빠는 맛없는거 줘, 했더니 정말로 맛없는 것만 골라서 준다. 영우가 좋아하는 견과는 캐슈넛>아몬드>호두의 순.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간식도 건강식으로 먹는다.
아이패드로 색칠놀이를 하다가(우리 어렸을 때에는 색칠공부라고 불렀는데 어째서 색칠하는 놀이조차 공부라는 말이 붙어 있는 걸까) 숫자 1, 2, 3을 썼다. 곡선 모양이 서툴고, 비율이 맞지 않고, 크기도 서로 맞지 않지만 처음 숫자를 썼다. 감개무량하다.

1039일 좌우

신랑이 영우랑 통화하는데 영우가 김치냉장고 쪽에 가서 '나자영의 자, 나영우의  우'라고 하더란다. 김치냉장고에 무슨 자우라는데 써있을까 했는데 알고보니 '좌우'에서 ㅗ를 떼고 본 것. 좌우가 뭔지 아냐고 했더니 왼쪽 오른쪽이란다. 뭔가 완벽히 알고 있는건 아니지만 꽤나 많이 알고 있는 것 같긴 하다. 나좌영과 나영우가 되었네.

1038일 일상

날씨가 추워서 할아버지가 어린이집까지 차로 태워 주셨는데 카시트에 앉으면서 '영우 엉덩이가 통통해서 카시트에 끼어요'라고 했단다. 그렇잖아도 15kg이 넘어서 신랑이 카시트 바꿔주려고 알아보고 있었다는데 참으로 귀엽구나.
어린이집 친구들이 모두 감기에 걸려서 영우만 빼고 모두 식사 후 감기약을 먹었나보다. 영우도 주세요 하길래 선생님께서 영우는 감기 안걸렸잖아 했더니 입을 가리며 '콜록콜록'을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웃겨 죽겠지만 영우는 감기약을 못먹어 에엥 울었단다.

1037일 조금 더 큰 영우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잘 때 선생님이 재워주시는데 이 날은 영우 혼자 잘래요 하더니 정말 혼자 누워서 금방 잠들었다고 한다. 혼자 잠드는 날이 오기는 오는구나.
독감 예방접종 때문에 병원에 갔는데 키가 94.1cm, 몸무게가 15.3kg이란다. 겨울이라 신발 밑창도, 옷도 두꺼울테지만 많이 컸구나 싶다. 어릴적 우리가 병원에 데리고 다닐 때는 주사를 맞으면 3초 에엥 울었었는데 할머니가 안 울고 맞을 수 있지? 해서 네~ 대답하더니 정말 안울었단다. 병원에서 주사맞은 후에는 사탕을 주는데 그동안은 별 관심이 없다가 드디어 사탕을 먹었나보다. 할아버지가 사탕 먹으면 벌레 생기는데? 했더니 사탕 먹고 치카치카하면 되요 했단다.
할아버지가 영우랑 놀아주실 때 가장 곤란한 상황이 모르는 단어를 영어로 물어볼 때인데, 그런 상황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날은 마름모가 영어로 뭔지 물어봤단다. 흠, 마름모가 영어로 뭘까, 참 곤란한 질문이다. 요즘은 점점 발음도 좋아져서 four은 꽤 비슷하게 발음한다. 이렇게 조금씩 더 커가고 있구나.

1035일 더 잘 놀아주세요.

언제나 아빠 차 타고 어디 갈건지가 제일 궁금한 영우이지만 독감이 유행한다고 하니 되도록 집에 있고 싶다.
신랑이 구슬타워를 만들어서 놀아주는데 잘 못만들고 길이 자꾸 막히자 '뭐야뭐야, 이게 뭐야'라고 외친다. 7개월 전만 해도 아빠가 만들어준 타워에 구슬을 떨어뜨리며 '이야~ 아빠 대단한데~'를 외친 꼬맹이가 잊는 '뭐야뭐야'란다.
굴러다니는 나의 이어폰을 발견하고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궁금해한다. 핸드폰에 꽂아서 귀에 꽂으면 음악소리가 들린다고, 영우랑 이어폰 한 쪽씩을 나누어끼고 음악을 들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니 제법 오랜시간 듣고 있다가 음악소리가 좋다고도 한다.
영우의 놀이 경험치가 높아지면서 이제 과거의 놀이만 답습해서는 영우를 만족시킬 수 없다. 엄마아빠, 더 노력해서 더 잘 놀아주세요.

1034일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 이브다! 작년에도 올해에도 어린이집 산타할아버지한테서 선물을 받았지만 우리가 준비해주는 선물은 처음이다. 타요 주차장세트를 생각하긴 했는데 공간을 차지할 것 같아서 대충 넘길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목요일에 통화를 하면서 지게차가 갖고 싶다지 뭔가. 그래서 급히 주문한 뽀로로 지게차는 택배박스 그대로, 포장도 하지 못한채 전달되었다. 할아버지의 오토바이, 할머니의 부츠, 큰이모의 다운점퍼, 작은이모의 공구세트, 어쩜 다들 그리 적절한 선물을 잘 고르는지 별다른 준비를 못한 나는 반성반성.
송년회겸, 동생 생일 파티겸, 크리스마스 파티겸, 다같이 저녁식사를 했다. 예전에 갔었던 본가였는데 영우는 놀이방을 보고는 급흥분을 한다. 지난 번엔 여름에 왔던 것 같은데 그새 많이 커서 이제 슬라이더를 잡고 내려올 정도의 힘과 무게가 생겼다. 놀이방에 비치되어 있는 뽑기를 보고 계속 돈 내놓으라고 하고 뽑기에 홀리게 된 것은 에러. 식당을 나서는 순간에도 내일 이 식당 또 올거라며 다짐을 하더라.
다같이 모여 케잌과 과일을 먹으며 생일 축하도 하고 선물 교환도 하는 시간. 크리스마스도 그저 휴일일 뿐이었는데 우리 자매 모두 가족이 생기니 다같이 모여 보내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뜻깊고 색다르게 느껴진다. 영우도 착한 일 많이 해서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많이 받았다며 기뻐한 하루다.(산타할아버지는 이브 저녁에 다녀가신다는 것은 비밀)

1028일 자동차 수리공

가지고 놀던 자동차의 뒷바퀴가 빠졌다. 정비소에 데려가서 고쳐야 한다며 견인차를 갖고 와서 자동차를 견인차에 실어온다. 빠진 바퀴를 끼워넣고 망치로 탕탕탕 두드리길래 완성이야? 했더니 '조금만 더'라고 하더니 살살살살 두드린다. 세 살치고는 꽤나 섬세한 손길이 아닐 수 없다. 포크레인까지 갖고 와서 뭘 더 튼튼하게 만들어놨단다. 그러나 영우가 고친 것은 뒷바퀴가 아니라 뒷통수라는 것이 함정.
자동차 수리뿐만 아니라 요즘 동물농장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는데 이 날 찍어놓은 사진이 딱 한 장이라 올려본다. 지금은 동물농장의 규모가 훨씬 커져서 이걸 잘 만들었다고 찍어놓은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기록이니까, 나의 육아일기는 다큐멘터리니까.

1027일 이모네 집 나들이

제부가 출근을 하여서 막내동생 부부와 함께 성민이네로 총출동. 집에서 잠깐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을 밖에서 먹고, 놀이방에 가려 했는데 휴무인 바람에 커피를 사서 집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이동을 했는데, 낮잠시간이 되어가 졸리기도 했겠지만 그 거리가 영우에게는 벅찬가보다. 힘들다고 주저앉는 바람에 내가 영우를 안았는데 이제 무겁기도 하고, 길이도 안맞아서 안고 가기가 너무 힘들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무 트리를 많이 받고 싶다고 했다길래 트리를 사야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었더니 동생이 사 놓은 트리를 꺼내서 영우와 함께 만들어주었는데 바로 파괴, 인증샷은 커녕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트리가 나동그라졌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트리는 아닌걸로. 대신 트리에 장식할 반짝이 꼬마 전구로 두 꼬맹이가 한쪽씩 잡고 뛰어다니며 난리가 났다. 성민이는 요즘들어 영우를 졸졸 따라다니는데 전구를 한쪽씩 잡고 꺅꺅 소리지르며 툭탁거리는것을 보니 형제가 힘들어도 좋긴 좋겠구나 싶기도 하다.
저녁에는 아파트 놀이터의 크리스마스 장식에 불이 들어와 있었는데 반짝거리는 것, 알록달록한 것을 좋아하는 아이답게 '이야, 이 놀이터 멋지다~ 그네도 있고 반짝반짝하고 멋지다~'며 감탄을 해준다. 덕분에 종일 잘 먹고 좋은 구경 많이 하고 잘 놀다 간다.

2017년 1월 4일 수요일

1026일 작품

할아버지가 사진 찍으려면 100원씩 달라고 했더니 여행가려고 모아놓은 장난감 돈을 꺼내온다. 할아버지가 핸드폰을 안 주시니 내 핸드폰으로 작품활동을 하였는데 수백장 사진 중에 하트표시 해놓은 사진이 있다. 뭐 알고 하트를 날린 건 아닐테지만 느낌 있다.
 
이 날 영우는 우리에게 엄마아빠 뭐 사왔어요?라고 물었다. 조부모님이 아이를 키워주고 주말에만 만나러 가는 맞벌이 부부의 전형적인 서글픔.

1024일 영우의 카톡

막내동생한테서 장문의 카톡이 왔다.
영우의 편지란다. 편지가 좀 잘리긴 했지만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사랑해요. 잘못했어요. 조금했어요. 문버렸어요. 핸들버렸어요.

1023일 셀카의 달인

요즘은 셀카를 포함하여 영우가 나오는 사진을 찍고 보는게 너무 좋은가보다. 소파에 매달리고도 찍어주세요, 할아버지 얼굴에 발을 대고는 브이, 못난이 표정으로 셀카. 대구에 갔다오면 신랑과 내 핸드폰에도 영우 사진이 넘쳐난다.

1022일 팝콘 신세계

 아빠가 영우가 뭔가를 먹고 있는 동영상을 올려주셨는데 뭘 먹는건지 완전 허겁지겁이다. 과자인 것 같은데 양 손으로 하나씩 집어서 계속 입에 넣는다. 아빠가 맛있냐고 물어보셔도 대답도 않고 바닥이 보일 때까지 계속 먹는다. 알고 보니 캬라멜 팝콘이란다. 그래 팝콘 맛있지, 캬라멜 팝콘이라면 얼마나 더 맛있겠니. 그래도 맛있는 팝콘 할아버지가 하나 달라고 하니 드리기는 하네. 군것질의 신세계가 열렸구나.

2017년 1월 1일 일요일

휴직 4주차

시간 참 잘간다. 열흘이 지나고 나니 마치 오랫동안 일을 하지 않고 쉬었던 것처럼 매일매일이 비슷해서 새롭게 쓸 내용이 없다.
일주일에 3~4회 헬스를 하고, 1~2회 필라테스를 한다. 그러면 오전이 휙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오후에는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 빈둥거린다. 지겹도록 놀고 나면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고들 하는데 그래본 경험이 없으니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길까 믿어지지가 않고, 결국 하고 싶은 일이 생기지 않으면 아웃풋 없는 휴직에 대한 스트레스가 생길 것 같다. 그래서 운동에 더 집착하는 것일지도. 어쨌든 R이나 SQL 공부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별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있다가 한 주를 완전히 무쓸모하게 보낸 후, 약속을 좀 잡아서 서울에 나갔다. YCV 송년회, 이직하느라 여유가 있는 선배, 고등학교 동기, 333, 그리고 회사 송년회까지! 프로젝트 시상도 있고 해서 연달아 3일동안 회사 사람들을 만났는데 3주간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니 휴직한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영우가 올라가면 자유시간은 끝이라고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하는데 딱히 땡기지가 않는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어딘가 가보기는 해야 할랑가.

1016일 김장

어린이집에서 김장을 했다. 세상에, 나도 한 번도 안해 본 김장을 영우가 하다니!
절인 배추를 뜯어 먹어보기도 하고 배추에 양념을 치댄다. 앞치마를 하고 비닐장갑을 끼고 양념을 덜어내서 바르는 모습을 보니 제법 진지하다. 이 꼬맹이들 귀여워죽겠다.
(이 정도 사진은 초상권 침해가 아닐테지?)

질풍노도 30대의 즐거운 인생

몇 주 전, 모바일로 블로그를 보다보니 제목이 매우 도드라져보였다. 질풍노도 30대의 즐거운 인생이라..이제 30대도 아니고 그다지 즐겁지도 않은데 블로그 이름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수지형 말마따나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블로그 이름이지.
그러나 요즘이 슬럼프일뿐, 나의 인생을 돌아보면 큰 좌절없이 평탄하게 지내온 것 같다. 그리고 즐거웠다. 어쩌면 그래서 별 것 아니다, 곧 지나간다 넘길 수도 있는 지금을 힘들게 보내는 것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요즘 상담을 받아보니 지금 이 시간이 내게는 꼭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비싼 돈 들여서 상담을 하고 있으니 나도 몰랐던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되돌아보려고 한다.
1. 나 자신에 대해 너무 엄격한 것, 이건 나도 알고 있었고 신랑도 항상 이야기해왔던 부분인데 선생님의 반응을 보니 그 정도로 나를 옥죄였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 이직을 하자마자 부서 이동을 하면서 그간 해왔던 일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좀 더 기술적인 부서에서 업무를 하면서 익숙치 않은 기술들을 사용하면서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있어왔다. 보통의 경우 이런 상황이라면 회사를 욕하고 비난하는데 나는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나를 질책하고 있다.
2. 현재의 내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나는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기존에 내가 사용하던 SAS는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 이 곳에서는 R을 사용하는데 사실 지금 내가 하는 업무에서는 R이 크게 사용되지는 않는다.
다만 일이 너무 많으니 신기술을 익힐 시간이 없고 야근을 하면서까지 공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없으니 이대로 도태되어 내 역할이 없어질까 걱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나의 나이와 기술에서 도태되는 우려가 결합되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었나보다.
3. 나에게 너무 엄격한 이 성격이 부모님의 교육방식에 의한 것은 아닌지 질문하셨다. 보통은 부모가 자녀를 압박하면 아이가 스스로에게 강박을 갖게 된다고 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특별히 압박을 한 적이 없다. 선생님이 엄마에 대해 떠오르는 단어를 이야기해보라고 했는데 긍정적이다, 희생적이다 외에 더 답할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내가 엄마가 어떤 인격체인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선생님에게는 좀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던 단어가 있었다. 예쁘고 세련되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보다 많이 배우고, 예쁘고,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했었고 엄마가 참 좋았다. 그래서 엄마를 더 돋보이게 해주고 싶었고, 엄마가 학교 임원을 맡으며 학교를 드나드는 것, 선생님이 엄마에게 내 칭찬을 하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내로라하는 아이들에게 밀려, 그저그런 학생이 되어 엄마가 돋보일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엄마가 내게 거는 기대를 알고 있어서 스스로를 더 엄격하게 대한 것 같다.
그리고 이 날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나는 고등학교 내내 나를 중하위권의 공부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입학 성적도 딱 중간이었고, 수능 결과도 딱 중간이었고, 정원이 많은 과를 지원했으면 서울대도 갈 수 있을 점수였는데, 너무나 객관적인 지표가 있었음에도 나는 내가 중하위권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울대를 가지 못했다는 컴플렉스가 그런 생각을 더 고착화시켰을테긴 하지만 그것을 이제서야 깨닫다니, 스스로에게 안쓰럽긴 하다.
4. 신랑이 함께 상담을 가주었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신랑은 너무 낙관적이고 나는 너무 걱정이 많아 둘의 괴리가 커보인단다. 15년을 함께 해오면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서로 다른 성향 덕분에 우리 사이가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특히 신랑이 창업 후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나의 불안과 강박에 대한 책임이 신랑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란다.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지만 서로의 생각 차이가 어디서 발생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선생님은 내가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실제로 내가 그런 사람인가,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하는 사람인가, 아닌 것 같아 해명을 하면 또 혼난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걸까?       
신랑과도 영우가 온 이후의 삶에 대해 좀 더 디테일한 부분까지 이야기하고 업무분장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부부의 가치관이 큰 방향은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괴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안다고 바로 고쳐지거나 할 순 없겠지만 나를 알고 나 자신을 내려놓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2016년은 너무나 힘들었다. 사실 2014년부터 지난 3년간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었다. 2017년부터는 좀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영우와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으면 좋겠다. 제발.
우리 모두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