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모바일로 블로그를 보다보니 제목이 매우 도드라져보였다. 질풍노도 30대의 즐거운 인생이라..이제 30대도 아니고 그다지 즐겁지도 않은데 블로그 이름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수지형 말마따나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블로그 이름이지.
그러나 요즘이 슬럼프일뿐, 나의 인생을 돌아보면 큰 좌절없이 평탄하게 지내온 것 같다. 그리고 즐거웠다. 어쩌면 그래서 별 것 아니다, 곧 지나간다 넘길 수도 있는 지금을 힘들게 보내는 것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요즘 상담을 받아보니 지금 이 시간이 내게는 꼭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비싼 돈 들여서 상담을 하고 있으니 나도 몰랐던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되돌아보려고 한다.
1. 나 자신에 대해 너무 엄격한 것, 이건 나도 알고 있었고 신랑도 항상 이야기해왔던 부분인데 선생님의 반응을 보니 그 정도로 나를 옥죄였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 이직을 하자마자 부서 이동을 하면서 그간 해왔던 일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좀 더 기술적인 부서에서 업무를 하면서 익숙치 않은 기술들을 사용하면서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있어왔다. 보통의 경우 이런 상황이라면 회사를 욕하고 비난하는데 나는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나를 질책하고 있다.
2. 현재의 내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나는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기존에 내가 사용하던 SAS는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 이 곳에서는 R을 사용하는데 사실 지금 내가 하는 업무에서는 R이 크게 사용되지는 않는다.
다만 일이 너무 많으니 신기술을 익힐 시간이 없고 야근을 하면서까지 공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없으니 이대로 도태되어 내 역할이 없어질까 걱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나의 나이와 기술에서 도태되는 우려가 결합되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었나보다.
3. 나에게 너무 엄격한 이 성격이 부모님의 교육방식에 의한 것은 아닌지 질문하셨다. 보통은 부모가 자녀를 압박하면 아이가 스스로에게 강박을 갖게 된다고 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특별히 압박을 한 적이 없다. 선생님이 엄마에 대해 떠오르는 단어를 이야기해보라고 했는데 긍정적이다, 희생적이다 외에 더 답할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내가 엄마가 어떤 인격체인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선생님에게는 좀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던 단어가 있었다. 예쁘고 세련되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보다 많이 배우고, 예쁘고,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했었고 엄마가 참 좋았다. 그래서 엄마를 더 돋보이게 해주고 싶었고, 엄마가 학교 임원을 맡으며 학교를 드나드는 것, 선생님이 엄마에게 내 칭찬을 하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내로라하는 아이들에게 밀려, 그저그런 학생이 되어 엄마가 돋보일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엄마가 내게 거는 기대를 알고 있어서 스스로를 더 엄격하게 대한 것 같다.
그리고 이 날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나는 고등학교 내내 나를 중하위권의 공부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입학 성적도 딱 중간이었고, 수능 결과도 딱 중간이었고, 정원이 많은 과를 지원했으면 서울대도 갈 수 있을 점수였는데, 너무나 객관적인 지표가 있었음에도 나는 내가 중하위권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울대를 가지 못했다는 컴플렉스가 그런 생각을 더 고착화시켰을테긴 하지만 그것을 이제서야 깨닫다니, 스스로에게 안쓰럽긴 하다.
4. 신랑이 함께 상담을 가주었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신랑은 너무 낙관적이고 나는 너무 걱정이 많아 둘의 괴리가 커보인단다. 15년을 함께 해오면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서로 다른 성향 덕분에 우리 사이가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특히 신랑이 창업 후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나의 불안과 강박에 대한 책임이 신랑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란다.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지만 서로의 생각 차이가 어디서 발생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선생님은 내가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실제로 내가 그런 사람인가,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하는 사람인가, 아닌 것 같아 해명을 하면 또 혼난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걸까?
신랑과도 영우가 온 이후의 삶에 대해 좀 더 디테일한 부분까지 이야기하고 업무분장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부부의 가치관이 큰 방향은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괴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안다고 바로 고쳐지거나 할 순 없겠지만 나를 알고 나 자신을 내려놓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2016년은 너무나 힘들었다. 사실 2014년부터 지난 3년간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었다. 2017년부터는 좀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영우와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으면 좋겠다. 제발.
우리 모두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