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1일 화요일

미술사 Day1 : 19세기 후반 프랑스, 인상주의


15주간의 미술사 시작. 이번엔 거슬러 올라가는 흐름으로, 19세기 후반부터 시작.

인상주의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미술관은 오르셰. 화가는 모네.
오르셰에는 1848년부터 1914년까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모네는 1840년부터 1926년까지 생을 보냈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이 시기의 흐름만 잘 잡아도 인상주의에 대한 대략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모네의 삶을 따라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인상주의에 대해 알아보자.

1840년 파리에서 출생하여 Le Havre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모네는 그 곳에서 부뎅의 문하생이 되어 정식 미술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처음엔 캐리커쳐를 그렸다고 한다. 후에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한 ‘해돋이 : 인상' 작품의 배경이 Le Havre인가보다. 인상주의 전시회에 해돋이만 출품한 줄 알았는데 ‘Capucines 대로’라는 작품도 함께 출품했다고 한다.
영국의 터너의 영향을 받았다, 마네가 큰 영향을 미쳤다. 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 바르비종파 밀레를 따라다니며 그의 영향도 받았나보다. 터너는 르네상스 스타일이고 바르비종파도 인상파처럼 풍경을 중심으로 하지만 전통 기법대로 그린다. 전통을 벗어나 순간의 색을 추구하며 모네피사로, 르누아르, 드가 등과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를 열게 된다. 지금의 내 나이에 또래 친구들과 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1870~80년대는 인상주의의 전성기이다. 모네는 인상주의의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Argenteuil에서 우리가 잘 아는 ‘생라자르역’, ‘양귀비’ 등의 작품을 남겼고 절친인 르누아르도 ‘물랭 드 라 갈레트’ 같은 작품을 남겼다. 이 시기에 튜브 물감이 발명된 덕분에 모네는 자유롭게 야외에서 야외의 빛을 느끼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둘이 같은 장소에서 그린 ‘라 그랑누이예르’같은 작품을 보면 뭔가 찡하다. 동시대에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줘서 내가 다 감사하달까.
Vetheuil로 이사한 모네는 까미유의 죽음으로 색이 다소 어두워지고 사람은 작아지는 등 화풍이 다소 변한다. 이 시기 즈음부터 모네는 풍경에, 르누아르는 인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80년대에 들어 드디어 Givereny 시대가 열린다. 1886년 제 8회 인상주의 전시회를 마지막으로 인상주의는 점점 쇠락하지만 모네는 ‘수련’ 연작, ‘루앙 대성당’ 연작 등 명작들을 남긴다. 예술가 중에서는 오래 산 편이라 사랑하는 여인, 친구들의 죽음을 다 지켜보고 1926년 생을 마감한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가 사망한 다음 해인 1927년에 오픈하게 된다.

1875년에는 오페라 가르니에가 문을 연다. 과거에는 오페라 중간중간에 발레가 들어가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름만으로는 오페라 전문 극장 같지만 현재는 바스티유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발레를 공연한다고 한다. 이 시기의 오페라 가르니에 덕분에 드가가 발레리나 그림을 그리도 많이 그려낸게 아닌가 싶다. 같은 인상주의 화가이지만 드가는 모네, 르누아르와는 많이 다르다. 주로 실내에서, 파스텔을 사용하여 그렸고 아름다운 발레리나를 주로 그린 것과는 달리 여성 혐오증이 있었다고 한다. 발레리나를 그리면서 항상 중절모의 신사도 같이 그린 것을 보면 비판의 의도가 있었을지도.
인상주의가 쇠락하고 나타나는 것이 후기 인상주의.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의 등장으로 후기 인상주의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평소 호기심 많고 후학 양성에 관심이 많았던 피사로가 쇠라를 인상주의 전시회에 데리고 왔다고 하는데 그의 독특한 점묘법이 동료들의 반발을 샀다고 한다. (신 인상주의라는 말도 있다고 하는데 신 인상주의는 순수하게 점묘법을 의미한다고.) 그리하여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는 쇠라, 고흐, 고갱, 세잔이지만 그들의 화풍엔 크게 공통점이 없어보인다. 그렇지만 인상주의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화풍을 보여주었으므로 새 사조를 여는 후기 인상주의로 인정.

지금까지 인상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였는데 사조라는 것이 지금 이순간부터 인상주의, 땅땅땅!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이전 시대의 사조에 반발하여 만들어지므로 다른 사조라 하더라도 그 시대를 함께 했던 화가들의 영향은 받기 마련이다. 인상주의 이전의 사조를 보면 앞서 얘기했던 바르비종파 외에도 사실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어느 사조에도 속하지 않지만 근대미술의 아버지인 마네를 빼놓을 수 없다.
1850년 쿠르베가 ‘오르낭의 장례’라는 작품을 내놓는데 이는 기존의 사조에 반대하는 사실주의의 시작을 의미한다. 1850년대에는 앵그르로 대표되는 고전주의와 들라크루아로 대표되는 낭만주의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고전주의는 역사적인 그림들만 가치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반면 낭만주의는 그에 반발하여 상상력과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에 쿠르베는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라는 사실주의를 주창하며 역사적인 사건이 아닌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인물 오르낭의 장례 모습을 그리며 대항을 하게 된다.
고전과 낭만에 대항하여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 내지만 그림을 그리는 기법은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쿠르베는 미술사에서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마네에게 내주고 만다. 마네가 ‘풀밭위의 점심’을 내놓은 1863년에 들라크루아가 사망하는데 낭만주의가 저물고 모더니즘이 탄생한 의미로 봐도 좋겠다.
전통적인 기법에서는 완벽한 색의 재현을 통해 사실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으며 그림의 명암이 서서히 변화하면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마네는 그림은 그림일 뿐이지 이상적, 사실적으로 보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명암 대비를 분명히 하여 오히려 평면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런 전통과의 결별로 마네는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고 인상주의파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다 쓰고 보니 너무 길다 ㅜㅜ
어떻게 구성하는게 좋을까 고민하는데도 한참 걸렸는데 연표대로 쓸 걸 그랬나?  
이것도 15회 진행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1년간 미술 공부하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화가는 모네. 누구나 다 인상주의 작품들은 좋아하지만 같은 인상주의 화가라도 인물보단 풍경을 그린 모네 그림이 좋다. 첨부하는 그림은 작년 피츠버그의 카네기 뮤지엄에서 찍은 모네의 수련.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찍으면 안되는 줄 모르고 찍었는데 가끔 열어볼 때마다 좋다. 유럽에 가면 오랑주리에서 하루 종일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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