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분량이 적지만, 다루는 내용이 가볍지 않고 생각할 것을 많이 던진다.
논어 자체나, 이 책을 평하는 것은 내 능력밖의 일이니 내가 하고싶은 얘기나 하련다.
1.
굴뚝위에 올라가서 농성하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는 이미 158억원 대의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어있는 상태에서도 또 하루 100만원의 벌금위협을 받았고, 청와대 문건을 보도하여 대박을 터뜨렸던 세계일보는 '명예훼손' 으로 고소당했다.
법조항을 들이대면서 위법이라 하면 위법인 줄 알겠지만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공자님 말씀을 빌어보자.
일광천하(一匡天下)
자공이 궁금한 듯 질문했다.공자님이 살던 시대에도 가치( 또는 이해관계의 ) 충돌은 언제나 있어왔고,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제자에게 설명해주는 모습이다. 몇천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세상은 비슷한 모습이고, 같은 기준을 우리에게 적용해보아도 자연스럽고 말이 된다.
"선생님, 제나라 관중은 사람다운 사람이 아니지요? 환공이 내전에 패배한 공자 규를 죽게 했지만 그의 참모였던 관중은 함께 죽지 않고 오히려 경쟁자였던 환공을 보필했으니까요?"
공 선생이 대꾸했다.
"관중은 환공을 보좌해 그이로 하여금 제후들의 어른이 되게 해서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도록 했으니, 백성들은 오늘날에도 관중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관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섶을 왼쪽으로 여밀 뻔했다(이민족의 풍습을 따를 뻔했다). 우리가 어찌 그이의 행정을 보통사람들이 사소한 일에 신의를 지키는 것에다 견줄 수 있겠는가? 그들이 스스로 도랑에서 목매어 죽더라도 알아주는 이가 없지 않던가?"
.......
공자는 관중을 자공의 책임론 맥락이 아니라 그보다 상위 가치로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자공과 달리 관중의 책임과 면책을 대립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가리는 기준은 둘이 동등한 가치를 가지지만 어느 것이 더 합리성을 갖는가가 아니라 둘 중 어느 것이 상위 가치이고 어느 것이 하위 가치인가에 있다는 것이다. 즉 상위와 하위 가치가 충돌한다면 하위 가치는 잠정적으로 유보되고 상위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분명히 헌법에 적혀있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배웠는데, 내가 자란 세상은 그렇지 않았으며 심지어 어떤 부분들은 형편없이 나빠지고 있다.
회사의 이익이 인간의 존엄보다 더 상위 가치인가?
명예(?!!)를 지키는 것이 언론의 자유보다 더 상위의 가치인가?
2.
자공이 정치의 우선 과제에 대해 물었다. 공 선생이 대꾸했다. "대내적으로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대외적으로 국방을 튼튼히 하며, 인민들이 정치 지도자를 믿도록 하면 된다."
자공이 주문했다. "만약 어찌할 수 없어 어떤 것을 제쳐놓아야 한다면, 셋 중에 어느 것을 먼저 검토할까요?"
공 선생이 대꾸했다. "국방 문제를 제쳐놓아야지."
자공이 또 주문했다. "어찌할 수 없어 어떤 것을 제쳐놓아야 한다면,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검토할까요?"
공 선생이 대꾸했다. "식량 문제를 제쳐놓아야지. 예로부터 사람은 모두 예외 없이 죽었다네. 인민들이 정부 또는 군주를 믿지 않으면 그 나라는 한순간도 존립할 수 없는 것이라네."
3.
저자는 '군자' 를 해석함에 있어 자율적인, 자기 주도적인 사람으로 보고있다.
참된 자기 자신을 찾는게 중요하다는 얘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복되고있다.
그만큼 내용이 방대하기도 하거니와, 시간을 초월하여 통하는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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