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5일 금요일

마이클 샌델 교수 강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란 책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보상과 처벌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약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라는 문장이 나와서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를 정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 초절정의 인기를 누린 마이클 샌델 교수는 지난 6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책을 내고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공개 강연회를 열었다. 주제는 예상할 수 있듯이 돈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이다. 우리 사회는 시장경제체제에서 시장사회로 이동하고 있다. 이미 돈과 시장가치가 삶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에 공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비시장적 가치에 대한 것이다.
 인간관계, 시민으로서의 의무, 교육 등은 비시장적 가치인데 이러한 가치들은 인센티브를 도입하면 그 가치가 변질된다. 예를 들어 어느 마을에 핵폐기물 처리장을 만든다고 하면 당연히 수용도가 낮겠지만 이에 대한 보상금을 주게 되면 수용도는 더 낮아진다. 핵폐기물 처리장 문제는 이미 경제적 논리가 통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의무감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경제는 윤리에서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공공재는 여럿의 기여에 기반하는데 이 기여를 금전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듯이 비시장적 가치 또한 시장논리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 시장의 원리와 돈이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비시장적 가치를 몰아내는지 구별하고 판단해야 한다.
  쓰고 보니 앞서 언급한 보상과 처벌법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당시 인센티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충분한 고민 없이 제공되는 인센티브는 효과가 없다는 것에 동의를 했던 것이 떠올라 뒤늦게 정리해보았다.

  사실 이 강의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은 영어 사대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이 강연 이전에도, 이후에도 TV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 강의를 보여준 적이 많았는데 이 분의 스타일은 먼저 가벼운 질문을 던져 찬반을 묻는다. 그리고 비슷한 논제에 윤리적인 부분을 추가하여 여전히 같은 생각인지를 묻는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기 위해 암표를 사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사람이 많을 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보고싶으니까 내 돈 더 주고 사겠다는데 왜. 이런 얘기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것이 중국 어느 병원의 진찰권에 대한 암표가 되면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도 여전히 암표를 사는 것에 찬성하는지를 묻는 식이다.
  간단한 예이지만 질문을 받을수록 생각이 복잡해질 수 있고, 평상시 윤리와 철학적인 측면에서 내 생각을 정리해 본 경험이 없으면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 이러한 내용들로 찬반 토론을 해야한다고 생각해보라. 한국말로 이야기해도 쉽지 않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로 마련된 그 강의장은 논리적인 토론장이 아니라  영어 스피킹 대회가 되어버렸다. 그냥 한국말로 하는 것이 좋았을 것을. 동시 통역도 제공되는 자리였는데 왜 굳이 영어로 말하고, 영어가 잘 안되는 것에 민망해 해야 했을까. 영어 잘하면 우와~ 박수치고 영어 잘 안되면 웃어버리는 그런 자리가 되어야 했을까. 그 자리는 논리를 펼치는 자리여야 했는데 무슨 초등학교 학급회의 토론회마냥 기부입학 정원으로 10%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면 그럼 15%는 왜 안되냐 이런 꼬투리나 잡고 몰아붙이고 승리했다고 기뻐하는 수준이었다. 10%라고 말한 것 자체도 질문자의 의도를 제대로 짚지 못한 답변이었단 것 또한 충분히 예상가능할 것이다.
  이번에 연세대에서 열린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의 모닝챗도 마찬가지다. 여긴 동시 통역이 제공되지 않고 사회자가 통역을 해주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 영어로 진행되었고 그 바람에 꽤 괜찮은 질문 하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제대로 답변되지 못했다는 것이 한창 화제가 되었다. 심지어 사회자의 IT 지식이 전무하여 에릭 슈미트 회장이 통역을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대충 넘어가버렸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한국말 써서 질문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언제부터 영어 못하면 질문도 못하게 된건지 원.
  물론 나도 외국에 나가면 유창하게 영어 잘하고 싶고 못하는 것이 부끄럽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느끼지 않아도 되는거 아닌가. 그렇지만 영어 잘 못하는 내가 이런 글을 쓰니 순식간에 영어 열등생의 투정이 되어 버리는구나.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