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여의도 불꽃축제를 다녀왔다.
이탈리아, 중국, 미국, 한국의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규모는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화려해졌으나 내용 면에서는 살짝 아쉬움이 있다. 국가별로 주제가 있긴 했으나 불꽃으로 표현하는 ‘사랑’이나 ‘강’이라는 주제는 어차피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음악이다. 불꽃축제에서 불꽃의 화려함 외에 다른 것을 이야기하게 될 줄이야.
처음부터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가 시작을 하는데 오페라 아리아가 흐르는 것이다. 와, 멋지다.
그저 이탈리아 화약 회사가 참여하는 행사일 뿐이지만 그들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악을 고민했을 것이고, 아리아를 택했고, 파바로티의 목소리와 함께 터지는 불꽃은 아름다웠다.
중국은 워낙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니 그저 스케일이 중국 스타일이구나 싶었다.(후반 국가일수록 스케일은 더 커졌지만)
음악에 대해 더 의식하게 만든 것은 미국 행사에서였다. 첫 곡인 All that Jazz가 흐를 때는 그래, 재즈의 본고향은 미국이지 생각했는데 얼마 후 Memory가 흐르는 것이다. 음악 주제를 뮤지컬로 잡은 모양이군, 그런데 Cats는 영국에서 시작했는데? 라는 생각은 오페라의 유령 OST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아, 미국은 뮤지컬의 본고장이 자기들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하긴 나도 문화사 수업을 듣기 전엔 뮤지컬 하면 뉴욕의 브로드웨이만 생각했지 4대 뮤지컬이 영국에서 시작된 걸 전혀 몰랐으니까. 그렇게 익숙한 넘버들과 함께 화려한 불꽃행사가 마무리 되었고 다음은 한국.
한국은 어떤 음악을 선택할까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이것이 한국 음악을 대표한다고 내세울만한 문화적 컨텐츠가 아직 풍부하지 않으니까 한화는 어떤 고민을 했을까 기대도 되고 우스개소리로 설마 강남스타일이 나오는건 아니겠지? 하며 기다렸다.
결과적으로는 실망. 한국의 음악 선곡은 해마다 써온 것 같은 대충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음악에다가, (담당자는 엄청 고심했을 것 같지만) 김연아 프로그램의 007 테마를 Yuna Kim이라는 소개 멘트까지 따다가 흘려보낸데다가, 박진영 노래도 나오고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불러서 더 유명해진 넬라판타지아도 나왔다. 한류로 대표되는 아이돌 음악을 내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전반적인 선곡이 실망스러웠다.
불꽃 축제가 올해로 12년이 됐다고 하는데 몇 년에 한 번씩 두 세 번 본 정도라 해마다 트렌드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다. 오랜만에 불꽃축제 보면서 혼자 불꽃이 아닌 음악에 의미 부여하고 쓸데없는 소리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컨텐츠가 조금만 더 풍부했으면 훨씬 좋은 행사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몇 년 전에 이런 행사를 접했으면 음악은 들리지도 않았을텐데 이런 아쉬움을 느낄만큼 그간 폭 넓은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 즐겁기도 하다.
덧붙여, 뉴스에서는 120만이 찾은 불꽃축제의 교통 대혼잡과 쓰레기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런 행사에 자그마치 서울 시민의 10%나 되는 120만명이 몰리는 놀거리 없는 우리나라 축제문화도 참 아쉽다.
참, 음악과 별개로 한화의 불꽃은 참으로 웅장하고 멋있었다. 마치 회장님의 출소를 기원하는 전 직원의 염원이 담겨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