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6일 금요일

제주도 여행

올해가 결혼 10주년이라 영우랑 제주도를 가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임신한 동생은 괌에 태교여행 가는 것이 소망이었는데 제부가 9월에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휴가 사용이 어려워져 버렸다. 이리저리 맞추어서 엄마아빠, 영우와 우리, 동생이 함께 3박4일 제주 여행을 하게 되었다. 노인 둘과 임산부, 꼬맹이를 동반한 여행이라 걱정이 많았으나 생각보다는 잘 지내다 왔다.
가장 걱정했던 것은 기압차 때문에 영우가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갈 때도, 올 때도,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느라 이동을 시작하자 바로 잠들어 착륙할 때 깨어났다. 밥을 잘 먹을까 하는 것도 걱정이었는데 요리가케를 많이 준비해서 끼니때마다 바꿔가며 먹이니 아주 잘 먹었다. 사실 집에 있으면 간식이며, 과일이며, 엄청난 양을 먹는데 딱 밥만 먹으니 배가 고프긴 했을 것이다. 우유 달라고, 밥 달라고, 바나나 달라고 난리친 적도 있는데 안타까운 것은 다른 음식들은 안 먹고 밥만 먹었다는 것.
영우가 잘 때 몸부림을 많이 쳐서 침대에선 재울 수 없다고 한실을 알아보라는 엄마 말씀과, 휘닉스 아일랜드에서 묵고 싶은 나의 바람, 추석연휴와 주말이 앞뒤에 버티고 있던 타이밍 때문에 3일 숙소가 다 달랐다. 영우가 매일 낯선 환경에서 잘 적응할까도 걱정이었고, 이동 거리가 긴 날도 있는데 차를 잘 탈까도 걱정이었는데 완전 기우였다. 숙소마다 영우는 신나서 돌아다녔고 한시간 반동안 자지도 않고 바깥 구경을 하면서 가는데 칭얼대지도 않았다. 택시가 보이면 택띠를 외치고, 안되는 발음으로 야자수도 외쳐보고, 비행기가 보일때면 비행기도 외친다.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영우가 뛰어놀 수 있도록 조경이 잘 되어 있는 샤인빌 리조트, 휘닉스 아일랜드, 통나무 펜션을 예약했는데 불행히도 가운데 이틀간 비가 엄청 왔다. 덕분에 동선도 완전 꼬였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일정은 다 소화했다. 숙소의 환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쉬울뿐.
첫 날도 흐린 날씨긴 했으나 비는 오지 않아서 야외 공원인 베니스랜드에 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 날은 비바람이 몰아쳐서 식사만 겨우 하고 내내 숙소에 머물렀다. 휘닉스 아일랜드에 수영장과 놀이방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달까. 영우는 베이비 수영장이 아닌 실내 수영장은 처음이었는데 낯설었는지 처음에는 튜브도 타기 싫어하고 물 안에 들어가는 것을 겁내는 것 같았다.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발로 물장구 치는 것만 하다가 물에 들어가서 걸어보더니 그제서야 좀 재미가 붙었던 듯. 숙소가 가까우니 물기만 대충 닦고 리조트에 올라와서 씻겼는데 물놀이한 후에 나 혼자 영우를 씻기고, 나도 씻기는 아직 무리일 듯하다. 저녁 먹고는 놀이방에 갔는데 이제 제법 볼풀에서 놀 줄을 안다. 볼풀 위로 넘어져도 보고 뒤뚱뒤뚱 걸으며 볼을 던지기도 한다. 놀이방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역시 자동차 굴리며 바퀴 관찰하기. 맥포머스가 있었는데 거기에 바퀴를 붙여 영우 인생 처음으로 만든 자동차가 탄생했다. 그런데 사진 한 장 안 남겼네그려.
다음 날도 역시 비가 와서 아쿠아플라넷에 갔다. 이제 제법 알아보는 것들이 생겨서 펭귄과 악어(사실은 도마뱀이지만), 상어를 가리키며 말한다. 처음 본 펭귄과 상어, 신기했을까? 재미있었을까? 수족관을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는데 영우가 반응을 해주니 뿌듯하기 그지없다.
잠깐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섭지코지를 둘러보았는데 영우는 휘몰아치는 제주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잔다. 이 날 바람 때문에 감기가 걸린 것 같기도 하다. 점심은 근처에서 전복죽을 먹었는데 밥은 아예 없다길래 죽 안먹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 잘 먹었다. 영우가 제주도 와서 먹은 유일한 제주도 음식같은 음식. ㅜㅜ
다음 숙소는 복층 통나무집이었는데 바로 옆에 양떼 목장도 있고 말 목장도 있다. 날씨만 좋았으면 양도 보고 말도 보고 했을텐데 비가 와서 아무데도 나가지 못했다. 침대에서 영우 안고 놀다가 낙상하는 사고만. 그래도 복층이라 계단 오르내리며 영우는 나름대로 신났다. 다음 날은 거짓말처럼 날이 좋아져서 통나무집 앞의 잔디정원을 뛰어놀기도 하고, 잠시 말 구경을 하기도 하고, 방황하는 고양이를 구경하기도 했다.
떠나는 날 날씨가 좋아져서 아쉽지만 이게 어딘가. 에코랜드로 향하였다. 비가 오는 바람에 동선이 꼬여서 반대 방향으로 다시 이동. 10시쯤 도착했는데도 에코랜드에는 중국 관광객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영우는 그림책에서 보았던 기차를 타며 '기차'를 외쳐준다. 예전에 에코랜드에 왔을 때 잘 꾸며져 있어서 아이와 함께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영우는 아직 조금 더 어리다. 키즈동산도 있는데 거기서 놀려면 조금 더 커야하겠다. 날씨가 좋았던 덕분에 이리저리 잘 다녔으나 곧 출발할 시간이다.
제주공항 근처의 동문시장에 가서 선물용 초컬릿과 크런치를 샀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영우에게 크런치를 주었다. 생전 처음 맛보는 달달한 맛에 절반쯤 남았을 때 한 입에 밀어넣더니 '또~'를 외친다. 어찌나 웃기던지. 공항에서는 오렌지에이드와 커피를 사서 마셨는데 오렌지에이드를 먹여보았더니 아마도 신 맛 때문에 그대로 뱉어낸다. 그러다 커피를 마셔보더니만 계속 달라고 따라다닌다. 얘 입맛은 왜 이런거야?
그 외 몇 가지 에피소드.
떼쓰거나 사람을 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영우 그러면 안된다고 잘못했습니다 해, 라고 하면 손바닥을 비비면서 고개를 숙인다. 영우 재워보겠다고 옆에 누워서 섬집아기를 불러주었더니 귀를 막는다. 엄마가 가끔 노래를 부르면 못부르게 입을 막는다고 한다. 신랑이 술안주로 오징어채를 사와서 먹는데 영우가 달라고 난리를 쳐서 주려다가 떨어뜨렸다. 바닥에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니만 영우 배 위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제 세음절을 연습하려고 하는 중이다. 나영우, 야자수, 배터리, 떡볶이를 비슷하게(내 귀에만 비슷할수도) 따라하였다. 제주도도 가르쳤는데 이건 아무리 시켜봐도 도도라고 발음한다. 제.주.도. 각각 시켜보면 곧잘 비슷하게 발음하는데 붙여서 제주도를 시키면 도도가 된다. 마치 쌀.밥.은 되는데 살밥이 되는 경상도 발음의 유머 케이스처럼.
작년에 영우를 대구로 보낸 이후, 1년만에 영우와 1주일을 함께 보냈다. 여행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잘 지내다 왔고, 온전히 1주일을 함께 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힘들기도 하겠지만 영우의 일상을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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