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받은건 10년이 넘었다. 연애하던 시절 신랑이 사준 책으로 본인이 추구하는 삶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연애할 때 이런 책을 선물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나. 심지어 글씨도 작고 편집도 딱 읽기 싫게 생겼다! 신랑은 내가 그 책을 읽은 줄 알고 있다가 몇 년 전엔가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고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번 독서모임 주제가 가치관인지라 오래된 이 책을 꺼내보았다.
다른 번역서들의 제목은 ‘소유냐 존재냐’인데 이 책은 그냥 존재론적 삶이 삶이라고 생각하고 ‘소유냐 삶이냐'로 지어진 것인가보다. 본문에서는 소유양식, 존재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인간은 어찌되었던 소유하려는 경향과 존재하려는 경향을 모두 갖게 되는데 소유양식을 감소시키는 정도만큼 존재양식이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양식을 선택할지는 본인이 선택해야 하고, 에리히 프롬은 왜 존재양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능동적, 소외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존재양식에서 존재는 긍정적인 능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는 상태로 최고의 능동적인 삶을 구현하는 것인데 현대적 의미의 능동은 능동과 단순한 분주함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현대인들의 분주함은 극히 수동적인 것으로 인간의 노예상태가 강화된다. 소유양식은 능동적이지 않고 수동적으로 충족될 수 있는 욕망이 만족될 때의 쾌감을 추구하는데 이는 내가 소유하는 것의 양과 질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힘을 추구하게 된다.
소외는 시장적 성격으로도 표현될 수 있는데 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병적인 성격을 의미한다. 소유양식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은 모두에게서 소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생소한 관계에 있으면서 이기적 이익과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필요 때문에 얽혀 있다 뿐이지 진정한 관계가 아니다. 이러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서도 나타나는데 경제, 결혼시장 등 모든 시장에서 자기 자신을 성공적으로 팔리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서도 소외된다.
책을 읽으며 인상적인 부분이 있는데 일상생활에서의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을 비교 설명하는 부분에서 독서, 학습, 지식에 관한 부분이다. 그간 나의 책 읽는 방법, 지식을 얻는 방법이 정확히 소유양식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철학책이나 역사책을 읽을 때 주요 사상을 외움으로서 철학자들을 알 수는 있다. 그러나 단순한 정보획득의 차원을 넘을 수가 없으므로 철학자에게 질문하고 그들과 말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다. 지혜가 담겨있는 지식으로 승화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이콘드라는 책을 읽으며 답답함을 많이 느꼈는데 나의 학습하는,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의 큰 문제점을 알게 되었다. 소유냐 삶이냐를 읽을 때에도 한 챕터 내내 잘 안읽히는데 관심있는 분야에서는 또 잘 읽히는 것을 보면 지식이 부족한데 지혜를 끌어내려는게 무모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중에 하나는 아래와 같다. 본문을 그대로 옮겨두겠다.
시장적 성격구조를 가진 사람은 단지 최대의 능률을 가지고 사물을 움직이고 일하는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 왜 그렇게 바삐 움직여야 하는가, 또는 왜 최대의 능률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아무도 그럴싸한 대답을 못한다. 그들은 인간은 왜 사는가, 인간은 왜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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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이 물건을 사거나 소비하기를 좋아하나 산 물건에 대해 깊은 애착이 없는가 하는 난문에 대해서는 시장적 성격이 갖는 현상에서 가장 의미 깊은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시장적 성격은 애착심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사물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물건이란 오로지 소비의 대상일 뿐이다. 친구나 애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깊은 연대감이 없기 때문에 그들 역시 소비의 대상인 것이다.
...두뇌에 의한 조작적 사고의 지상권은 정서생활의 위축을 초래한다. 정서생활은 촉진되지도 않았고 필요치도 않거니와 오히려 출세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어린이의 수준 이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 그 결과, 시장적 성격의 소유자는 감정적 문제가 관련되는 한에서는 기묘하게 단순하다. 그 단순함으로 인해 그들이 성실한 사람인지 협잡꾼인지를 판단할 수가 없다. 이 사실은 어째서 그렇게 많은 협잡꾼들이 정신적 종교적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가, 강한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해서 시장적 성격 소유자에게 강하게 호소하는가를 설명해준다.
순수한 종교적 인물과 강한 종교적 감정으로 위장한 선전원을 구별할 수 없다.
신랑께 이젠 떳떳해 지실 수 있겠네요. ^^
답글삭제참 많은 노력과 사랑이 깃들인 블로그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으로 내셔도 되겠어요. 반갑구요!
Oldman님 안녕하세요.
답글삭제저의 블로그 첫 댓글이예요! 영광입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요즘 블로깅이 좀 뜸했는데 힘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