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일 일요일

휴직 4주차

시간 참 잘간다. 열흘이 지나고 나니 마치 오랫동안 일을 하지 않고 쉬었던 것처럼 매일매일이 비슷해서 새롭게 쓸 내용이 없다.
일주일에 3~4회 헬스를 하고, 1~2회 필라테스를 한다. 그러면 오전이 휙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오후에는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 빈둥거린다. 지겹도록 놀고 나면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고들 하는데 그래본 경험이 없으니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길까 믿어지지가 않고, 결국 하고 싶은 일이 생기지 않으면 아웃풋 없는 휴직에 대한 스트레스가 생길 것 같다. 그래서 운동에 더 집착하는 것일지도. 어쨌든 R이나 SQL 공부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별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있다가 한 주를 완전히 무쓸모하게 보낸 후, 약속을 좀 잡아서 서울에 나갔다. YCV 송년회, 이직하느라 여유가 있는 선배, 고등학교 동기, 333, 그리고 회사 송년회까지! 프로젝트 시상도 있고 해서 연달아 3일동안 회사 사람들을 만났는데 3주간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니 휴직한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영우가 올라가면 자유시간은 끝이라고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하는데 딱히 땡기지가 않는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어딘가 가보기는 해야 할랑가.

1016일 김장

어린이집에서 김장을 했다. 세상에, 나도 한 번도 안해 본 김장을 영우가 하다니!
절인 배추를 뜯어 먹어보기도 하고 배추에 양념을 치댄다. 앞치마를 하고 비닐장갑을 끼고 양념을 덜어내서 바르는 모습을 보니 제법 진지하다. 이 꼬맹이들 귀여워죽겠다.
(이 정도 사진은 초상권 침해가 아닐테지?)

질풍노도 30대의 즐거운 인생

몇 주 전, 모바일로 블로그를 보다보니 제목이 매우 도드라져보였다. 질풍노도 30대의 즐거운 인생이라..이제 30대도 아니고 그다지 즐겁지도 않은데 블로그 이름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수지형 말마따나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블로그 이름이지.
그러나 요즘이 슬럼프일뿐, 나의 인생을 돌아보면 큰 좌절없이 평탄하게 지내온 것 같다. 그리고 즐거웠다. 어쩌면 그래서 별 것 아니다, 곧 지나간다 넘길 수도 있는 지금을 힘들게 보내는 것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요즘 상담을 받아보니 지금 이 시간이 내게는 꼭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비싼 돈 들여서 상담을 하고 있으니 나도 몰랐던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되돌아보려고 한다.
1. 나 자신에 대해 너무 엄격한 것, 이건 나도 알고 있었고 신랑도 항상 이야기해왔던 부분인데 선생님의 반응을 보니 그 정도로 나를 옥죄였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 이직을 하자마자 부서 이동을 하면서 그간 해왔던 일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좀 더 기술적인 부서에서 업무를 하면서 익숙치 않은 기술들을 사용하면서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있어왔다. 보통의 경우 이런 상황이라면 회사를 욕하고 비난하는데 나는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나를 질책하고 있다.
2. 현재의 내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나는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기존에 내가 사용하던 SAS는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 이 곳에서는 R을 사용하는데 사실 지금 내가 하는 업무에서는 R이 크게 사용되지는 않는다.
다만 일이 너무 많으니 신기술을 익힐 시간이 없고 야근을 하면서까지 공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없으니 이대로 도태되어 내 역할이 없어질까 걱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나의 나이와 기술에서 도태되는 우려가 결합되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었나보다.
3. 나에게 너무 엄격한 이 성격이 부모님의 교육방식에 의한 것은 아닌지 질문하셨다. 보통은 부모가 자녀를 압박하면 아이가 스스로에게 강박을 갖게 된다고 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특별히 압박을 한 적이 없다. 선생님이 엄마에 대해 떠오르는 단어를 이야기해보라고 했는데 긍정적이다, 희생적이다 외에 더 답할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내가 엄마가 어떤 인격체인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선생님에게는 좀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던 단어가 있었다. 예쁘고 세련되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보다 많이 배우고, 예쁘고,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했었고 엄마가 참 좋았다. 그래서 엄마를 더 돋보이게 해주고 싶었고, 엄마가 학교 임원을 맡으며 학교를 드나드는 것, 선생님이 엄마에게 내 칭찬을 하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내로라하는 아이들에게 밀려, 그저그런 학생이 되어 엄마가 돋보일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엄마가 내게 거는 기대를 알고 있어서 스스로를 더 엄격하게 대한 것 같다.
그리고 이 날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나는 고등학교 내내 나를 중하위권의 공부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입학 성적도 딱 중간이었고, 수능 결과도 딱 중간이었고, 정원이 많은 과를 지원했으면 서울대도 갈 수 있을 점수였는데, 너무나 객관적인 지표가 있었음에도 나는 내가 중하위권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울대를 가지 못했다는 컴플렉스가 그런 생각을 더 고착화시켰을테긴 하지만 그것을 이제서야 깨닫다니, 스스로에게 안쓰럽긴 하다.
4. 신랑이 함께 상담을 가주었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신랑은 너무 낙관적이고 나는 너무 걱정이 많아 둘의 괴리가 커보인단다. 15년을 함께 해오면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서로 다른 성향 덕분에 우리 사이가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특히 신랑이 창업 후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나의 불안과 강박에 대한 책임이 신랑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란다.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지만 서로의 생각 차이가 어디서 발생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선생님은 내가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실제로 내가 그런 사람인가,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하는 사람인가, 아닌 것 같아 해명을 하면 또 혼난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걸까?       
신랑과도 영우가 온 이후의 삶에 대해 좀 더 디테일한 부분까지 이야기하고 업무분장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부부의 가치관이 큰 방향은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괴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안다고 바로 고쳐지거나 할 순 없겠지만 나를 알고 나 자신을 내려놓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2016년은 너무나 힘들었다. 사실 2014년부터 지난 3년간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었다. 2017년부터는 좀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영우와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으면 좋겠다. 제발.
우리 모두 해피 뉴 이어!

2016년 12월 27일 화요일

1014일 그림과 편지

장화그림 이야기를 쓰기는 했지만 사실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낙서에 가깝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영우 나름대로는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신랑이 옆에서 같이 그려줘서 구체적인 스토리가 나온 것일지도 모르지만 영우는 불을 그리고, 소방차와 소방호스를 그리고, 불을 끄는 물을 그려나갔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지금은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이야기도 해주었다. 참 많이 컸구나.
핸드폰을 갖고도 노는 것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유튜브를 열어 동영상을 보거나 잠금화면에서 숫자를 누르는 것만 했는데, 이제는 카메라를 열어 셀카도 찍고 문자를 타이핑하기도 한다. 이 날은 뭐라뭐라 중얼거리며 엄청 많이, 길게길게 타이핑을 했는데 편지를 쓴거란다. 엄마아빠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데 웃겨죽겠다.

1013일 성민이의 돌잔치

조카의 돌잔치라니, 벌써 1년이라니, 그동안 건강하게 자라주어 고맙고 동생과 제부도 정말 고생 많았다.
이 날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정되어 있어 도로도 통제가 되었다. 돌잔치 장소가 집회장소에서 한 블럭 떨어져 있어서 조금 일찍 나서서 영우와 촛불집회를 가볼까 어쩔까 생각만 하다가 또 날씨 핑계로 패스 ㅜㅜ
돌잔치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꽤 오랜만이다. 행사 전에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소품들이 많이 있어서 영우도 소품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자동차도 타면서 놀았다. 주인공이 입장할 때는 RC 자동차를 타고 들어오는데 사람들이 박수치며 축하해주자 성민이도 영우도 매우 즐겁다. 사회자와 행사장 직원들이 생일축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데 조명까지 번쩍거리자 영우는 뛰어나가서 춤을 춘다. 아이고야, 남의 돌잔치에서 봐오던 흥만이가 영우가 될 줄이야.
식사는 꽤 괜찮았는데 영우는 역시나 거의 먹지 않았다. 첫번째 접시는 영우가 담아달라는 것들로 담아왔는데 케잌과 떡을 고른다. 여러가지 다른 음식들을 먹여보려고 시도했으나 케잌과 떡 조금 먹고는 바깥으로 탈출하여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다행히 소리는 지르지 않지만 식당을 뛰어다니던 민폐 꼬맹이는 옆쪽 룸에서 사회자들의 생일축하 댄스가 시작된 것을 발견하고는 거기 들어가고 싶어서 난리다. 식당 구석에 주차되어 있던 RC카를 발견하고는 타고 싶어서 끌어당기며 어쩔 줄 모른다. 타면 안된다고, 애기들이 타는 거고 고장나면 안된다고 했더니 받아들이기는 하는데 못내 아쉬운지 주차되어 있는 차들의 백미러를 일일이 접어주고 나온다. 영우 쫓아다니느라 동생 내외랑 많이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1년동안 고생 많았고,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바르고 건강하게 잘 키우길 바라는 내 마음은 전해졌겠지.

그리고 이 날의 에피소드 몇 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사은품으로 받아온 종이 트리인데 스티커로 장식을 할 수 있어 영우 수준에는 딱이다. 이제 스티커를 제법 바르게 잘 붙인다. 잠깐 좋아하더니 곧 파괴해버린다. 사진은 파괴직전 기념샷.

영우와 밴드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좋아요 할래' 한다. 그리고 정말로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 요며칠 아빠가 사진마다 좋아요를 누르시더니 영우가 한거였구나.
행사장에서 처음 정수기를 본 영우는 컵에 물을 담는 것이 매우 재미있다. 차가운 물을 담다가 뜨거운 물도 담아보려 하는데 버튼을 누를 줄 모르니 여기는 물이 안나오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버튼을 눌러 뜨거운 물을 담는 것을 보더니 그대로 따라한다.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만 영우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앞으로 더 주의깊게 봐야겠다싶다.  

1011일 장화그림

요즘 그림 그리기에 푹 빠진 영우는 스케치북에 한가득, 몇 장씩 색칠을 해놓는다. 이 날은 글쎄 장화를 그렸다지 뭔가. 물론 장화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물에 대하여 무엇을 그린 것이다라고 한 적은 처음이라 기념으로 올려둔다. 영우의 장화는 오른쪽의 깔때기 같은 것이고, 그 아래 제대로 된 장화는 할아버지가 장화는 이렇게 그리는거라며 새로 그려주신 것이다.

2016년 12월 15일 목요일

휴직 열번째 날

아침에 겨우겨우 일어나서 운동을 갔다. 매일 복근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하라는데, 이렇게 힘든 운동을 꾸준히 잘 할 수 있을지. 오늘의 GX는 지금 체력으로는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세 가지 운동을 쉬지 않고 한 사이클 한다길래 너 나가라는 이야기로 들려서 일찍 마쳤다. 월,수만 GX를 하고 화,목은 필라테스를 열심히 해야겠다.
점심은 TGI에서 먹었는데 버스 두 정거장 정도의 거리이지만 걸어서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이지만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분당의 아파트 단지들을 구경하였다. 낯선 동네를 걸으며 여행가면 현지인들의 동네를 돌아보던 낯선 설레임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아직도 낯설기만 한 이 동네, 이 곳에 정착하게 될까?
통합계좌조회를 해보고 잠자고 있던 돈 십여만원을 찾아냈다. 계좌를 해지하는데 아직도 계좌번호를 외울 수 있는, 대학교 입학할 때 학관에서 만들어서 썼던 그 계좌를 해지하려니 뭔가 서운하다. 그래도 이런 서비스는 아주 잘 만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