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7일 목요일

9월의 어느 날..


확실히 체력이 떨어졌다.
이젠 정말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주말에 세 개씩 일정잡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은데 지난 주에 쉬어야겠다, 피곤하다 말만 하고 결국은 또 토요일 두 개, 일요일 세 개의 일정.
난 주말에 엄청 바쁘고 신나고 즐거운 사람인데 이것도 나이들고 체력 떨어지니 힘들어지는구나. ㅜㅜ

회사에서는 프로젝트가 막바지로 접어들어서(끝나도 또 시작되겠지만) 회의도 많고 정신도 없다. 야근 횟수가 엄청 많은 건 아닌데 컨설턴트랑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예전엔 마케팅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는 핑계로 SNS, 뉴스 등을 보며 쉴 틈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시간이 거의 없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따라갈 수도 없고, RSS가 나도 모르는 사이 30개가 쌓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음 달 이사도 해야하는데 집정리할 생각을 하면 갑갑하다. 온갖 쓰레기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 것인지. 가장 편한건 엄마가 올때까지 모른체 방치하는 것인데 이 나이 먹도록 엄마를 괴롭힌다는 생각에 또 스트레스. 그렇다고 내가 미리 움직이지도 않으니 그것도 또 스트레스.
몸이 피곤하니 신경도 예민하다. 소음과 냄새. 업무 시간에 가래끓는 소리를 수시로 낸다던가, 마우스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작업을 한다던가, 파티션 너댓 개를 넘나드는 큰 목소리 통화라던가 하는게 너무 거슬린다.

지난 주 미술사 수업, 책, 영화, 전시회,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정리가 안되서 블로그에 올릴 수가 없다. 회사다니면서 블로그 관리마저도 잘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시간관리를 어떻게 하는거지?
아마도 이 글이 이번 달 마지막 포스팅이 될 듯. 아 벌써 10월이라니 흐르는 세월이 무섭다.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50/50이야기



영화 50/50 DVD가 재발매되었다. 개봉한지는 이미 10개월이 지났고 초판 DVD도 완판되었다.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재발매를 기다리는 팬들의 사랑으로 드디어 재발매되었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PR회사 PRAIN부터 여준영대표, 트윗을 통한 인연까지 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지만 최대한 담백하게 이 영화의 마케팅 사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대한민국 PR회사 1위인 PRAIN에서 수입한 첫 영화, 50/50
흔히 얘기하는 마케팅의 4P를 어떻게 활용하였는지 살펴보자.
Place, Promotion, Product, Price.
영화 홍보에서 4P는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을 뛰어넘은 멋진 사례들. 각 영역을 따로 살펴보기엔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굳이 나누어서 살펴보자면,

Place : 온오프라인 믹스 전략. 온라인으로는 공식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외에 온라인샵을 활용하여 제품들을 홍보하고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참여형 입소문 전략을 구사, 오프라인으로는 퓨어아레나를 활용
Promotion : 50/50 티켓을 퓨어아레나에 갖고 오면 갖고 온 장수에 맞추어 퓨어아레나 커피, 스티키몬스터랩 콜라보 포스터, 50/50 글라스, 스티키몬스터 피규어를 주는 프로모션. 부모님과 함께 관람 온 사람들에게 50/50 글라스, 퓨어아레나 식사권, 직접 제작한 50/50 마카롱 제공.
Product : 50/50 글라스, Charity Band, 마카롱, 컵홀더, 포스터, 피규어, DVD.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제작한 상품들은 여러 프로모션에도 사용되었고, 제품 하나하나마다 스토리가 있다. 함께 colaboration 진행한 스티키몬스터랩은 지금 여준영대표가 구성원으로 참여하여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활발한 활동 중. 특히 Charity Band의 수익금은 영화 주제에 맞게 암환자를 위한 기부금으로 사용되었고 매 순간 소셜네트웍을 활용..
Price : 영화 마케팅에 Price는 상수 아닌가? 그런데 반전이 있다. DVD 제작에 따른 Price 정책. 보통 DVD는 출시 때 정가를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헐값으로 떨어진다. 50/50은 그와 반대로 출시 후 일정 시점이 지난 후 오히려 DVD 가격을 올렸다. 출시를 손꼽아 기다린 우선예약 고객에게 혜택을 준 셈.

이리하여 50/50은 사실 개봉 당일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15만이 넘는 관객이 든 것으로 알고 있다. 관객은 50/50의 팬인지, Prain의 팬인지, 여준영대표의 팬인지도 모르게 열광하는 사례가 꽤나 많았다. 최근 또 영화 작업을 진행하는 것 같은데 이번엔 어떤 기발한 마케팅을 펼칠지 기대된다.

2012년 9월 20일 목요일

산다는건

80년대에 ‘운동'이란 학생 운동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현재 ‘운동’이란 골프를 말한다는 것. 이 엄청난 괴리.
늘상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이념이란 얄팍하기 그지 없지만 이진경에 관한 글을 읽다가 지금 방금 문득 든 생각.
지난 주 일요일에 처음 들은 ‘이진경'이란 이름 석자. 오늘 문득 생각나 검색하고 읽은 첫 글.
http://ch.yes24.com/Article/View/13849


세상에 참 대단한 사람들 많지만 이런 사람이 또 있구나.
그 시대, 윗 방 김근태와 아랫방 노회찬과 토론하며 놀던 시대보다 지금이 더 나은 시대인가.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깊이고 없고 생각도 없고 다듬지도 않은 글이지만 블로그가 있으니 내 맘대로 적을 수 있어서 좋다. :)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사랑의 척도

배우자에게 하루에 몇 번 전화하시나요? 그 횟수가 사랑의 척도가 될 수 있나요?
술자리에서 연애하고 있는 모차장님의 애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맞은편에 앉은 팀장이 보기엔 그 달달함이 엄청 부러웠나보다. 연애할때가 참 좋은거 같다며 나더러 남편과 전화 자주 하냐고 묻는다.
음~ 잘 안하는데요? 하루에 한 번? 안할때도 있고?
했더니 사랑하기는 하냐고. =_=;;
거기에 대고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데라고 닭살 떨 필요는 없지만 전화 횟수로 사랑을 측정할 수 있나?


전날 우리는 존재에 대한 확인을 논하느라 바흐를 듣고 이야기하고, 인공지능과 뇌과학을 이야기하고, 합스부르크 왕가를 이야기하느라 두시 반까지 안 잤는데. (대부분의 시간은 웹툰 보면서 보낸건 쏙 빼기)
평소에 많은 얘기들을 하다보니 대충 말해도 알아듣고, 말 안해도 알아듣고, 표정만 봐도 알아듣는데.
우리 서로 이름 부르는 것만으로도 꺄르르 웃겨 죽겠는데.
사랑은 전화 횟수로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막 이래.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미술사 Day2 :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클림트



유럽 여행을 간다면 제일 먼저 밟고 싶은 땅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에 가고 싶고 베토벤의 묘지에도 가보고 싶고 벨베데레 궁전에서 키스를 보고싶다.
미술사에서 오스트리아는 큰 영향력이 없지만 음악사에서는 베토벤과 모차르트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오스트리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피렌체에 메디치가 있엇다면 오스트리아에는 합스부르크. 로마 시대 이후 유럽의 국가들은 과거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했고 합스부르크 가문 역시 결혼을 통해 전략적으로 영토를 늘려갔는데 전성기는 카를 5세 시절로 르네상스가 끝날 무렵, 프랑스보다 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다. 루터와의 갈등도 있었던 카를 5세는 말년에는 황제에서 물러나 수도원 생활을 하였다. 넓은 영토 중 아들인 펠리페 2세에게는 지금의 스페인 지역을, 동생에게는 오스트리아 지역을 물려주었으나 스페인 합스부르크는 루이 14세에 의해 망하게 되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는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지게 된다.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마리 앙투와네트. 프란츠 슈테판과 오스트리아의 국모로 추앙받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했다가 형장의 이슬이 된 바로 그녀이다. 대중적으로는 마리 앙투와네트가 유명하지만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사랑하는 사람은 시씨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는 엘리자베트. 요제프 황제와 엘리자베트는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를 통치하였고 이 시대에 클림트와 요한 스트라우스가 활동한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왈츠를 정책적으로 부흥시키는데 이때 요한 스트라우스 부자의 활약으로 왈츠가 빈의 대표적 문화가 되고 클림트는 빈 분리파라는 미술사의 새로운 사조를 열게 된다. 구스타프 말러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며 문화의 부흥을 꾀한다.

클림트(1862~1918)는 금 세공사였던 아버지의 영향, 20세기 프로이드 심리학의 영향, 일본/중국 등 동양풍의 영향을 받아 어느 화가와도 차별적인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 마네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인물화에도 입체감이 없다. 인물화에는 풍경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고 풍경에는 사람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것도 특징적이고, 그의 풍경화는 정사각형 프레임에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인물 뿐 아니라 풍경화에까지 장식적인 요소가 강조되어 고흐의 영향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을 말하자면 관능성과 장식성, 아르누보와 표현주의의 작가로 대표되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역시나 풍경화.
19세기 빈의 주류 미술에 반대하는 클림트, 에곤 쉴레, 코코슈카 등이 활동한 빈 분리파는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겐 자유를"을 외친다. 빈 분리파 전시관 이름이 Secession인줄 알았더니 분리파 그 자체를 의미하는 모양이다. 이제는 우리 시대에 맞는 그림을 그리자고 외치며 전사의 이미지인 아테네 여신을 상징으로 삼는다.
숱한 염문을 뿌린 클림트이지만 정작 결혼은 하지 않았다. 사망 당시 그의 자녀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14명이나 있었다고 하니 성적으로 매우 문란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순정도 있나보다. 클림트 동생 부인(우리나라 식으로는 제수씨)의 여동생인 에밀리 플뢰게와는 죽는 순간까지 곁에 머물며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예술인들에겐 뮤즈가 있게 마련, 그녀가 뮤즈인가 싶다가도 그의 대표작인 ‘키스’의 여인이 에밀리 플뢰게다, 구스타프 말러의 부인인 알마 말러다, 의견이 분분한 걸 보면 그냥 문란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유디트로 대표되는 팜므파탈을 나타내는 그림들을 보면 깨어 있는 사람인 것도 같다. 그 시대 여성은 이성이 없는 존재로 폄하되었는데 악녀든, 퇴폐적이든 본인의 이성에 따라 행동하고, 의도적으로 유혹하여, 도발하고 쟁취하는 자주적인 여성을 표현한 것이니.
‘키스'의 그 여인이 누구이든 간에 국외로는 나갈 수 없다는 그 그림을 내 눈으로 한 번 보고싶은 소망이 있다.

2012년 9월 17일 월요일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와닿지도 않고 불편한 마음이 가득하다. 와튼에서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얻는 것을 협상이라고 가르치는건가? 일상의 소소한 것들도 협상이라 생각하고 감정적 지불을 하며 얻어내고 나면 기쁨을 느낄 수 있는건가?


물론 중요한 일과 관련된 협상 사례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케이스를 나열해야 책으로 많이 팔릴 수 있으니 가벼운 사례 중심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서 깨우침을 얻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삐딱한 사람인 것인지 영 마뜩잖다. 아이들과의 일상적인 협상 부분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지만 나머지 사례는 별로.
일상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정적 지불을 하느라 내 감정을 쓰느니 금전적 지불을 하는게 낫겠다 싶기도 하고, 그다지 큰 일도 아닌데 그냥 내가 양보하고 말지 싶기도 한 나의 어정쩡한 태도 때문이리라. 표정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기 어려운 모자란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취향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뭔가를 절실하게 원하는 마음이란 것이 어린아이보다도 크지 않기 때문이리라.

독서 모임에서 일상에서의 소소한 협상 성공사례 세 가지를 공유하자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마땅한 사례가 없다. 이렇게 심심하고 밀당없는 인생이라니.
실패한 사례는 있다.
11시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10시 45분에 운동을 마치고 10분만에 샤워하고 달려내려가려 계획했는데, 코치가 와플을 먹고 가라고 한다. 아니요. 한 번 거절. 나가다가 붙잡혀서 아니요, 괜찮습니다, 또 한 번 거절. 그러나 질질 끌려와서 억지로 와플이 손에 들려졌고 달디단 아이스티까지 먹어야 했다. 정말 먹기 싫었다면 밤 11시에 밀가루와 당분을 먹으면 소화가 안된다고 말을 하던가, 사실대로 11시에 약속이 있어서 씻고 나가고 싶다고 얘기하던가 했어야 했는데 그런 말을 하기 싫어서 그냥 뚱하게 받아먹고 기분 상한티를 내는 꼴이라니. 내려오는 길에 이거 협상책 읽고 있는 사람 맞나싶어 또 자책했다. 나란 인간 모자란 인간.

2012년 9월 16일 일요일

피에타



피에타 (이탈리아어: Pietà) 는 이탈리아로 슬픔, 비탄을 뜻하는 말로 기독교 예술의 주제 중의 하나이다. 주로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를 떠받치고 비통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것을 말하며 주로 조각작품으로 표현된다. 이는 성모 마리아의 7가지 슬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그리고 십자가의 길 제13처에 등 예수의 처형과 죽음을 나타내는 주제이다. - Wikipedia

가장 유명한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상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조각품으로 미켈란젤로가 완성한 거의 유일한 조각상이라고 한다. 피에타의 뜻을 몰랐더라도 미켈란젤로의 조각이란 것을 몰랐더라도 이 조각상은 미술책에서 많이 보아서 익숙할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이 조각을 20대 초반에 완성하였다고 하니 천재긴 천재인듯.

김기덕 감독의 작품 피에타, 왜 제목을 피에타로 했을까 싶었는데 보고 나면 적절하다싶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언제나 불편하다. 영화가 아닌 현실이기 때문에. 애써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늦었지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에 축하를. 계속해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