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9일 일요일

조리원 일상

조리원은 천국이라더니..뭐 이리 바쁘고 쉴 틈이 없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가면 조리원이 천국이었구나 싶을 정도로 힘들다는 의미일뿐인건가, 우리 조리원이 힘든건가.

조리원에서는 아침 8:30, 점심 12:30, 저녁 17:30에 밥을 먹는다. 긍정이가 언제 일어나는지에 따라 아침 먹기 전에 한 두번, 점심 먹기 전에 한 두번 수유하러 간다. 긍정이 컨디션이 좋지 않을때에는 오전에만 4번 수유하러 가기도 하는데, 먹기만 하면 잠드는 아이를 얼르고 달래며 젖먹이는데 한시간씩 걸리기 때문에(실제 먹는 시간은 15분만 되도 감사할 지경) 진이 다 빠진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이 아니면 관리할 시간이 없어서 마사지를 받고 있는데, 이 시간만큼은 그냥 나를 위해 쓴다. 근육이 거의 없다시피한 상태에서 출산을 했더니 마사지 해주는 아가씨가 조금만 건드려도 아프다. 빨리 회복되면 좋겠다. ㅜㅜ
오후 2시부터 3시 반까지는 신생아실 소독시간이라 긍정이를 방에서 보살피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밥 먹은 직후부터 수유하라는 콜이 걸려오기 시작하기 때문에 두세시간씩은 씨름을 한다. 집에 가면 하루 24시간을 이렇게 보내야하겠지. 처음에는 단둘이 있는 것이 무서워서 재우려고 애썼는데 그렇게 되면 이후에 수유하러 불려다니는게 힘들어진다. 아무튼 아이를 혼자서 본다는 건 정말 힘들다. 물 한 잔 마시러 나가기도, 화장실에 가기도 어려우니..긍정이가 오면 엄청 긴장되는지 왜그리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
저녁 식사 후에도 두 세번 더 수유하고 나면 10시가 넘어가는데 그럼 그냥 분유 보충해 달라고 하고 나는 밤중 수유는 하지 않는다. 산모들 중에는 100% 모유수유하느라 밤새 수유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항상 피곤에 절어있다. 아침 6시에 콜 받고 나가면 다들 혼이 나간 상태로 수유하는데 참 대단하다싶다. 지금 이 마음과 사랑으로 아이를 키워야할텐데..신생아때는 내 몸 축나는 것도 아깝지 않은데 왜 아이들이 자라면 그 마음이 변하는걸까..
일정이 이렇다보니 너무 바빠 쉴 틈이 없고, 가장 큰 문제는 언제 콜이 올지 모르니 항상 대기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긍정이가 먹고 깨는 시간이 패턴이 생기면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스트레스도 덜 받을텐데. 온종일 한 번 눕지도 못하는 날이 있는가하면, 중간중간 나오는 간식을 제 시간에 먹기도 힘들다. 요가니 뭐니 조리원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한번도 참석해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집에 가면 더 힘들겠지.

와중에 사람들과도 잘 지내야 하는 미션이 있다. 딱히 조리원동기라는 이름으로 만남을 지속하고 싶지는 않지만 있는 동안은 유별나지 않게 보내야하니까. 이렇게 쉴 틈이 없는데 사람들은 수유실에서 수다떨고 노는게 좋은가보다. 오늘 저녁엔 햄버거를 시켜먹기로 했다.
최근에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 줄을 이었는데 본인이 중산층 정도라고 생각하는 30대 여성들은 이 안타까운 사회현상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 그렇다고.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해, 상대적인 박탈감에 죽는거라고. 우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야할 이 사회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이런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건 이제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이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각일 것이라 생각하니 참 안타깝다.
조리원에서 애 보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나라 걱정까지!

2014년 3월 8일 토요일

12일차 긍정이와의 일상들

2/25 오후 처음으로 젖을 물려보다. 젖이 나오진 않았겠지만.
2/26 오전 11시 긍정이가 젖을 빨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다.
2/27 조리원 입소
2/28 양쪽 십분씩 먹고 세시간을 내리 자는데 어찌나 좋던지.  처음 기저귀를 갈아보다. 그러나 토하기도.
3/1 오전에 양쪽 눈을 다 뜨고 또릿또릿 주변을 살피는 모습에 우리 긍정이 똑똑한가? 요런 생각이 들어 잠깐 헛웃음이 났던 5일차 베이비의 엄마.
3/3 처음으로 혼자 긍정이를 본 날. 퇴근한 신랑 보고 눈물 바람.
3/6 정기검진 : 3.5kg 배꼽 떨어지다.
3/7 입 안에 곰팡이가 피었다. 일찍 못알아봐서 미안해 ㅜㅜ
3/8 신랑이 긍정이랑 보내는 시간에 자신감이 붙었다.

2014년 3월 5일 수요일

육아 블로그

이 블로그는 이제 육아 블로그가 될 성 싶다. 뭐 이전에도 잡다한 신변잡기와 일상들을 기록해 놓는 블로그였으니, 이제 그 일상의 대부분이 육아에 투입될테니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다. 긍정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일상을 기록해줄까, 아무래도 짬이 안날테니 메모로그 남기기 괜찮은 툴은 없을까, 사진은 어떻게 올리지, 생각만 많다가 이 블로그에 사진 없이 기록만 남기기로 한다.
독서 모임에서 신년 계획을 공유하기로 했으나 입원과 출산으로(앞으로는 육아로) 참석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생각해 볼 틈도 없었더랬다. 꽃피는 3월에 나혼자 신년 계획을 이야기하니 좀 우습기도 하고, 계획이라는게 가능한 영역이 아닌 것 같아서 멘탈만 추스려본다. 앞으로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많이 일어날텐데 스트레스 좀 덜 받을 수 있도록 더더욱 수양하고, 괜찮은 부모가 될 수 있도록 긍정이의 피드백을 잘 살피고, 신랑과도 지금처럼 지낼 수 있도록 잘 조율해 나가도록 해야겠다.

덧. 37주 전에 태어나면 36주 6일생이라 하더라도 미숙아라는 의료 기록이 남아 병원 갈때마다 언제 태어났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은 신랑이 그럼 긍정이는 22일에 태어나면 좋겠다~ 했었고, 그럼 주말이라 담당 원장님이 없을거라 했더니 24일에 태어나면 되겠네 했었는데 25일에 태어났다. 새벽이라 결국 담당 원장님이 해결해주진 못했지만 많이 신경써주셨지.
또 덧. 신랑은 정말 긍정이가 빨리 태어나길 바랬는지 별그대가 먼저 끝날까, 긍정이가 먼저 태어날까 이야기하곤 했는데 긍정이가 이겼다. 농담인줄 알았는데 말이 씨가 되어버렸네.

2014년 3월 1일 토요일

질풍노도 출산기

오늘 베이비센터 앱에서 임신 38주를 알리는 메세지가 왔다.
휴. 이렇게 3월을 맞이하게 되다니.
지난 2월 25일 긍정이가 세상으로 나왔다.

출산이라는 것이 어찌나 개인차가 큰지 겪어보기 전에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기 어렵다. 원래 우리보다 예정일이 일주일 빨랐던 신랑 친구네 커플은 7시부터 유도 시작해서 그 날 오후 2시에 낳았다고 하니 어쩐지 억울하기까지 하다. 나의 힘들었던 24일과 25일의 과정을 남겨본다.    

24일 새벽 두시쯤 잠이 깬 후 계속 잠 못 이루고 있던 중이었다. 세시쯤 됐으려나. 분비물이 좀 많이 나오는 것 같아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그러려니 했는데 양이 점점 많아져서 혹시 양수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 그러나 남들이 얘기하던 락스냄새가 나지 않아서 아닌가보다하고 다시 누웠다. 계속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신랑을 깨우고 병원에 전화해본 것이 5시. 한시간동안 더 관찰해보기로 하고 6시에 다시 통화 후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한 번 예상치 못한 입원의 경험이 있었던 터라 샤워하고 출산가방 점검하고 아침먹고 9시에 병원으로.
확인 결과 양수가 새는 것이 맞았고, 자궁은 1cm만 열려 있는 상태라 내일까지 지켜보자고 했다. 사람에 따라 양수 파열 후 바로 진통 걸리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으니 25일 오전까지 진통이 없으면 유도하기로 했는데 입원해서 10시부터 바로 촉진제를 맞게 되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는데. 11시가 넘으면서부터는 진통이 슬슬 시작되었다.
약기운이 잘 받는 것인지 오후 들어서는 진통이 꽤나 심해졌는데 자궁이 안 열려서 할 수 있는게 없다. 최소한 4~5cm는 열려야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다고 하는데 진행이 너무 느리다. 촉진제를 끊어보아도 진통은 이미 걸린 상태라 고통은 계속된다. 난 진통의 강도가 자궁 열리는 것과 비례하는건줄 알았는데 자궁이 안열려도 진통은 심하더라. 양수가 먼저 터지는 바람에 모든 것이 언밸런스하게 진행중인 것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이 와중에 임신 기간 내내 문제 없었던 혈압이 갑자기 170까지 높아지고 단백뇨까지 검출되어 임신중독증이 우려된다고 한다. 혈압이 높으면 자연분만시 임산부와 아이가 위험할 수 있으니 여유를 갖고 천천히 진행해보자고 하신다. 그러던 중 5시에 겨우겨우 자궁이 3cm 열려서 드디어 무통주사를 맞게된다. 원래는 맞으면 안되지만 혈압도 높고, 천천히 진행시킬거니 진통이라도 줄여보자며 맞은건데 다행히 혈압도 함께 내려갔다. 무통주사는 2시간 정도 효과가 있는데 보통은 한 번만 맞으니 4~5cm 열렸을 때 맞으면 두 세시간동안 자궁이 거의 다 열리는 정도의 속도로 진행되는거 아닐까싶다.
무통을 맞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던 무통천국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의학의 발달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나 약효가 떨어지는 시점의 진통을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고 원장님께 물었더니 혈압 때문에 진행상태 봐서 또 주사를 맞을수도 있다고 해서 어느정도는 안심이 되었다.
진행이 안될까봐 걱정하였는데 두번째 주사를 맞던 오후 8시에는 5~6cm, 11시에는 8cm정도 진행되어 다행이다, 곧 끝나겠구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 1시 확인결과 여전히 8cm. 그때부터 멘붕이 시작되었나보다. 혈압도 다시 높아져 원장님은 수술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고 하시고, 그런데 자궁근종 때문에 출혈이 많아질 수 있어 수술도 안전하지는 않다고 하셨다. 2시쯤 네번째 무통주사를 맞았으나 이때부터의 진통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띄어서 천국의 효과는 없었다. 나는 24시간을 거의 깨어 있었던 상태라 비몽사몽이었고, 폭풍이 휘몰아치는 내진과 스트라이핑을 거쳐 5시가 되었다.
힘든 중에도 긍정이가 잘 견뎌주어 아래쪽으로 많이 내려온 상태였고, 덕분에 힘주기? 밀어내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시작할 때에는 힘을 어떻게 줘야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다고 간호사가 칭찬해서 그렇게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진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주기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부분도 개인차가 클 것이다. 두 번 힘주고 낳았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을 보면. ㅜㅜ
한시간동안 엄청 용을 썼나보다. 온 몸의 실핏줄들이 다 터지고, 허벅지 뒷쪽엔 멍이 들고, 팔은 아직까지도 아프고, 근육들은 다 풀렸다. 신랑도 뒤에서 받쳐주느라 엄청 고생하고. 간호사는 애기 위험해진다고 계속 겁주고. 하늘이 노래져야된다는데 두 번쯤 올려다본 분만실 천장은 여전히 제 색깔을 띄고 있고. 완전 망연자실해있는데 간호사의 한숨. 그리고 신랑의 "이제 됐나봐" 하는 목소리. 원장님이 들어오고 두 번 정도 힘을 더 준 후, 긍정이가 나왔다. 이후의 과정들은 후기에서 본 것처럼 생 살을 절개하고 꿰매는데도 아픈 줄도 모를만큼 앞의 고통이 컸다.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쳐지는데 어떻게 다들 그걸 잊고 또 하는건지.

그렇게 만난 긍정이. 37주 3일만에, 겨우 정상분만으로 태어났는데 3.24kg으로 잘 커주어 고맙고. 양수가 먼저 터진 좋지 않은 상황, 진통이 길어 힘든 상황이었는데도 잘 견뎌주어 고맙고.
2014년 2월 25일 오전 6시 41분. 그렇게 우린 동지가 되었고, 긍정이의 엄마 아빠가 되었다.

2014년 2월 18일 화요일

꿈에

엄마와 수지형과 계곡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던 중..
수지형의 글을 보며 내가 감히! 글에 비약이 심해보인다는 평을 듣지 않았냐는 질문을 했다.
수지형은 그런 평은 들어본 적이 없으며, 내가 지적한 부분에 대해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비약이 아니라고 했다.
나도 수지형과 비슷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데 어릴적 선생님이 보고서는 비약이 심하다고 해서 그 이후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수지형은 어린 시절 썼던 문집들을 보여주며 글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나의 어린시절 글들을 보면서 더 이야기해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겐 어린시절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난 엉뚱하게도 자료들을 모아놓지 않은 엄마를 원망한다.

이 뜬금없는 꿈은 평소 수지형의 어린시절 감성에 대한 동경과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때 어떻게 기록관리를 해줄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섞인 것 같다. 그나저나 난 꿈에서도 엄마한테 못되게 구네>.<

2014년 2월 13일 목요일

못한 것과 한 것들

1월에는 많은 것을 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무언가를 하기 힘들겠지만 막상 계획하고 못하니 더 아쉬운 마음이 컸다.
2014년에 보려고 했던 이무지치 내한공연, 눈물을 머금고 취소. 2월에 파후드가 온다고 해서 그 시기엔 보러가는게 무리일까?라고 했던 날들이 참 덧없다. 점핑 위드 러브 사진전과 히로시 스기모토 사진전도 티켓이 있었는데 신랑 동료에게 넘겼다. 작년 크리스마스가 사진전 가기엔 딱 적기였었는데 그땐 몰랐지. 조리원에서 해준다는 만삭사진 촬영 서비스와 산전마사지 서비스도 취소. 아직은 장시간 외출이 부담스럽고 그저 서비스일 뿐이니 큰 미련은 없다.

병원에 있으면서 못한 것들만 자꾸 떠올리고 있었는데 친구가 밀린태교 잘하라는 긍정적인 말을 날려주었다. 그러게..생각해보면 그간 태교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을 한 적이 없다고 투덜댔었는데 이런 시간이 주어졌을 때 맘편히 쉬고 밀린태교 해야지, 못한 것들만 떠올리다니!

병원에 있는동안 '응답하라 1994'를 다 보았다. 1997도 썩 재미있게 보진 않았지만 1994는 한때 농구 빠순이었고, 신촌 하숙 이야기며 공감가는게 많을 줄 알았는데 내 추억 곱씹는건 좋아도 남의 추억 대신 보는건 별로인지 남들이 말하는 것만큼 썩 재미있진 않았다. 그리고 '노다메 칸타빌레'를 다시 보았다. 치아키 선배한테 푹 빠져있던 나의 서른 살 시절이 생각난다. 유치하지만 다시 봐도 재미있고 메인 연주곡 외의 배경음악들도 익숙한 것들이 많아져서 보는 재미가 더 쏠쏠했다.
책도 몇 권 읽었는데 따로 정리할 시간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프랑스 아이처럼'이란 책은 요약하자면 아이에 대한 관심이 가장 중요하단 것이고, 우리나라 엄마들은 미국 엄마들을 동경하는데 미국 엄마는 프랑스 엄마를 동경하는게 재미있다. 읽어볼만한 책이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행복의 추구'는 시간 때우기 용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빅데이터, 인재를 말하다'는 시간 아까웠던 책. 별 내용도 없는 20세기에 출판했던것 같은 고리타분한 내용을 21세기에 맞추어 데이터 얘기로 좀 포장하고 구글의 HR 사례 좀 추가해서 팔아먹으려고 하는 전형적인 제목으로 마케팅하는 책.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힐링용 책으로 공자님 말씀같은 얘기들이 가득하지만 병원에 있던 중에 맘 편히 읽기는 괜찮았다.

집에 와서는 밀린 웹툰도 보고, 아이튠즈 라디오로 음악도 많이 듣고, 바느질도 하고, 시시때때로 자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퇴원하고 보니 몇 개의 육아 웹툰들이 다 완결되어 있어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니 새록새록하다. 12월에 소셜커머스에서 DIY 배냇저고리 만들기 상품이 있길래 이걸로라고 태교 한 번 해보자 싶어 사놓고 엄두도 못내고 있다가 시간이 많아져서 시작했는데 나 생각보다 바느질에 소질있는 것 같다.

배냇저고리 처음 만들기 시작할 때 왼쪽 팔 꿰매고 오른쪽 팔을 작업해야 하는데 밑단이 팔인줄 알고 꿰맨 후 멘붕했던 이 어리버리한 시절을 지나서..
이 완성품은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음하하~

이제 내일이면 36주. 걱정했던 것에 비해 시간은 잘 가서 이제 긍정이가 언제 나와도 괜찮은 시점이 되었다. 언제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맘 편히 즐겨야지~ 곧 보자, 긍정아!

2014년 2월 6일 목요일

2014년 1월

2014년이 시작된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났으나 이제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다.
1월의 시작과 함께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인데, 당시에는 괴로웠는데 퇴원한지 2주 지났다고 지금은 또 잊혀져가려 한다. 기록을 해두어야겠다.

1월 1일 외출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배가 자주 아픔을 느끼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진통 어플을 깔고 진통 주기를 체크해보니 규칙적인건 아니지만 꽤나 자주 진통이 와서 병원에 전화를 해보았다. 당장 와보라는 간호사의 말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집에서보다 안 아픈 것이다. 역시 별 일 아니군, 민망하다, 이러고 있었는데 간호사가 깜짝 놀라며 들어와서는 자궁 수축이 심하다며 당장 입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길로 바로 입원 수속하고 세 시간 가량 라보파 용량을 올려가며 수축을 잡아갔다. 입원을 하긴 했지만 다음 날부터 용량을 한단계씩 내려도 크게 수축이 잡히진 않아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토요일 오전에 약을 끊고는 전격 퇴원 결정.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날 밤부터 또 수축이 오더니 너무나 규칙적인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겁이 덜컥 나서 병원으로 향했고 새벽 세 시 반, 두번째 입원 결정.
이 때부터는 굉장히 걱정되고 우울했다. 검색해보니 나와 비슷한 주수부터 조기 진통으로 입원하는 사례가 많기도 하거니와 장기 입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 게다가 한 번 퇴원했다가 재입원을 하니 두려움은 더 커졌다. 조기 진통의 원인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긍정이가 29주까지 역아였던 점, 근종, 지난 번 입원때 확인된 염증을 비롯해서 프로젝트로 인한 스트레스와 나의 쉴새없는 일정놀이 등 걱정하려 들면 한두가지가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두번째 입원 때는 병실이 없어서 하룻밤은 다인실을 이용했는데 화장실 이용 등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출산한 산모들이 짧게 입원하고 빠지기 때문에 장기 입원하면서 그들을 보고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일인실로 옮긴 후에는 편하긴 했지만 꼼짝도 않고 온종일 누워있다보니 우울한 날도 있어 몇 번의 눈물바람으로 신랑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라보파는 부작용이 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며 손발이 저리고 떨려서 밥을 먹을때 덜덜덜 하게 된다. 심하게는 폐에 물이 차기도 한다고 한다. 먹는 약이 있었는데 부작용 때문에 금지되어서 조기 진통이 오면 입원외에는 특별한 처방이 없는 것 같다. 그나마 내가 다닌 병원은 동네 병원이라 바늘 바꿀 때 씻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기도 했는데 대학병원은 그런거 없다고 한다. 검사받으러 다닐때 휠체어를 타고 다녔는데 오버 아닌가 싶었으나 심한 경우는 대소변도 받아내고 못 움직이게 한다고. 내 상태가 그 정도는 아니었음에 감사해야지. ㅜㅜ
재입원한 탓에 용량도 천천히 낮추며 상태를 확인해가고 있었지만 첫번째 퇴원시도를 하던 날 밤, 또다시 수축이 와서 다시 용량을 늘리고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밤이 되면 수축이 심해진다. 원래 배가 불러오면 불편해서 잠을 못자고 화장실엘 자주 가게 되서 자주 깬다는데 거기에 수액도 맞고 있지, 수축도 자주 오지, 거의 잠을 못잔 날도 많다. 그래도 하는 일이 없으니 낮에 자면 되고 잠은 빨리 드는 편이라 많이 피곤하진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선 잠 잘자는 체질이고 뭐고 이런거 없는 듯.
우여곡절 끝에 1월 21일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사실 그 전날 밤도 아마 간호사를 불렀으면 퇴원 못했을 것이다. 너무 집에 가고 싶어서 그냥 수축이 와도 참았다. 혈관도 다 터지고 여기저기 멍 들어서 팔에는 더 주사 놓을 곳도 없고, 병원생활 더 하기도 괴롭고, 우울하기도 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원장님이 검사할 때도 수축이 나타났지만 나갔다가 안좋아지면 다시 입원할 생각하고 일단 퇴원하자고 하셔서 퇴원할 수 있었다. 집에 와서도 계속 누워있었지만, 여전히 밤이 되면 잘 잘 수 있을까 걱정되지만 집에 있으니 너무 좋다!
이제 토요일이면 35주, 긍정이는 자리를 제대로 잡았고 몸무게도 2.5kg, 폐가 성숙되는 시기도 지난 터라 걱정이 덜 된다. 아직 병원 외에는 집 밖에 나가본 적이 없는데 이제 슬슬 걷고 운동도 해보라고 하시니 고비는 지난 것 같다. 현재는 출산휴가를 땡겨쓰고 있는 중이다. 내 직장생활에 이런 팔자도 있다니, 긍정이가 그간 너무 힘들어서 나 좀 쉬라고 시위를 한 건가보다. 긍정아 앞으로 한 달만 더 잘 견뎌보자꾸나~!
병원 있을때부터 엄마가 올라오셔서 퇴원해서까지 보름 넘게 내 수발 들어주시느라 고생하셨는데 나는 나중에 내 자식한테 그렇게 잘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우선 엄마한테나 잘해야지, 별 일 아닌데 버럭버럭하는 못난 나. 오랫동안 맘고생했을 신랑과 걱정해준 친구들 모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