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쏘서에 들어가서는 놀지 않고 밖에 서서 장난감들을 누르며 논다. 사실 요즘엔 응가 장소로 잘 활용되고 있다. 스프링이 있어서 뭔가 편한 것인지 응가할 때 꼭 쏘서를 잡고 옆에 서서 힘을 준다.
그러다가 이 날은 어쩐 일인지 쏘서에 들어가고 싶어해서 엄마가 안에 넣어주고 주방에서 잠깐 볼 일을 보셨는데 일이 분 있다 와보니 이미 쏘서에서 나와서 거실에서 놀고 있더란다. 어떻게 나온걸까? 아직 그 정도 요령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쏘서에서 탈출해 있다니.
이제 정말 많이 컸구나 싶기도 한데 더더더 한 눈 팔면 안되겠다 싶다.
오전에 커피 사러 나갔다 오면서 이발을 했는데, 마지막에 울음보가 터진거 겨우 달래고 빨리 씻기려고 바로 집으로 올라왔더니 들어가기 싫다고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우는데 목소리도 안나올 정도로 서럽다. 오후에도 물건 사러 꽤 멀리까지 걸어서 다녀왔는데 또 들어가기 싫다고 해서 한바퀴 또 돌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잠이 좀 모자랐는지 울기 시작한다. 안아주면서 이제 일어나라고 했는데 계속 울면서 양말을 막 신는다. 두 번이나 나갔다 왔는데 자고 일어나자마자 또 나가겠다고? 그리하여 신랑이 영우를 데리고 나가서 동네를 한참 돌아다니다가 놀이터에 갔다. 그네도 타고 말도 타고 자동차도 탔는데 집에 갈 생각이 없는 영우. 일어나자마자 나와서 기저귀도 안 갈았고 저녁도 먹어야 되는데 집에 가자고 하면 싫다고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억지로 그네에서 끌어내려서 손잡고 가려고 하니 어찌나 소리를 지르는지, 그럼 엄마아빠는 갈테니까 영우 혼자 놀라고 하고 돌아서는데 영우는 혼자 그네 쪽으로 간다. 어머나 세상에, 얘를 어쩌면 좋아. 해달라는대로 다 해줄수는 없고 밥도 먹여야해서 우린 그냥 집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한참을 걸어갈때까지 영우는 따라오지 않고 우리를 쳐다보고만 있다가 드디어 혼자 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쫓아오기 시작한다. 혼자 올때까지 데리러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디선가 오토바이가 나타나는 바람에 데리러 갔더니 나를 보고 미소를 날려주던지. 그렇게 손잡고 들어오긴 했는데 18개월밖에 안 된 아이와 실랑이 하다가 놀이터에 혼자 남겨두기를 감행할 줄이야, 앞으로가 참 험난해 보인다.
이가 나려는지 간질간질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영우도 낯선 느낌에 손가락으로 잇몸을 눌러보는 것 같기도 하고, 실제 약간 불룩해진 잇몸 아래로 흰 것이 비치는 것 같기도 하다고 생각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엄마가 매일매일 관찰하셨다고 하는데 전날까지도 이가 뚫고 나오지 않았었는데 드디어 이가 뚫고 나왔다. 그것도 양쪽 윗 송곳니와 오른쪽 어금니까지 세 개나! 송곳니가 나올 차례라 생각해서 어금니는 생각도 못했는데 어금니도 함께 나온 것을 확인하였다.
영우의 입 안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저녁 시간에 누워있는 영우를 간질간질하면서 장난을 쳤더니 깔깔 웃는 바람에 이가 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는 요즘 영우가 밥을 잘 씹어먹는 것 같더니 어금니까지 났구나 하며 기특해하신다. 이제 맛난 음식 많이 씹어먹을 준비가 되었네.
드디어 어린이집 가는 날. 1년만에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성장하여 사회 활동을 시작하다니 감개무량하다.
영우네 1세 반에는 문화센터에 함께 다닌 아이와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던 두 명이 있는데 다 1~3월생이다. 1월생 남자아이보다 영우가 더 커서 엄마가 아주 뿌듯하셨다고 한다.
적응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은 엄마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시고 다음 주부터는 맡겨놓고 나가면 된다고 하는데 한 시간만 놀고 가려고 하니 영우는 더 놀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쉬워할 때 집에 가야 어린이집에 또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며 나름대로의 신입생 프로세스에 잘 적응중이다.
다음 날엔 입소를 축하한다는 문자도 받고, 어린이집 카페에도 가입하였다. 지금까지는 책가방 메고 잘 다니고 있는데 완벽 적응해서 엄마가 편해지시면 참말 좋겠네.
아빠가 아침 일찍 등산을 가셨는데 파란색 등산셔츠를 입고 가셨다고 한다. 오후에 산책 나갔다가 마주친 젊은 아저씨가 아빠가 입은 셔츠랑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하는데 영우가 그 아저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할비, 할비 했단다. 젊은 사람한테 할비라고 하니 그 아저씨도 당황스러워해서 엄마가 아침에 할아버지가 비슷한 옷을 입고 나가서 옷 비슷하다고 이야기하는거라고 했는데 아빠 나가시는 모습을 아주 잠깐 봤을텐데 눈썰미가 좋나보다.
발음도 꽤나 좋아졌다. 좋아졌다고 하는건 순전히 우리 기준이지, 제3자가 듣는다면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18개월 유아 수준에선 발음이 좋은 것 같다. 아직 세 음절은 잘 말하지 못하지만 두 음절짜리 단어들은 꽤 알아들을만하다. 사과, 포도, 타조, 사자, 기린, 펭귄, 낙타, 로이, 앰버 등등. 영상통화할 때 어쩌다 보는건 아까워서 동영상으로 남겨놓고 싶은데 나름대로는 집중해서 이야기하느라 힘든 것인지 시킬 때마다 이야기해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