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7일 수요일

15개월 리뷰

영우와 연휴 3일을 함께 보내고 올라오는 길. 예전에 충분히 놀아주면 아쉬움이 덜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올라오는 길부터 영우가 보고싶어 힘들다. 같이 살면서 내가 키워도 힘들겠지만 이렇게 헤어지는 시간도 참 힘들다.
영우는 요즘 기본 상태가 즐겁고 흥이 넘치며 호기심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 상태이다. 가만히 있어도 귀여움이 넘치는데 장난까지 걸 줄 안다. 밥 먹을 때 동요를 틀어주는데 BaaBaa Black sheep이란 노래의 전주만 나오면 내 무릎에 손을 대고 손가락을 펼치며 꺄르르 한다. 무엇에 반응한 것일까, 이 행동이 영우에겐 무슨 의미일까 참 궁금하다.
이제 영우도 장기 기억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예전에는 떼를 쓸 때 잠깐 주의를 돌리면 뭘 요구하던 중이었는지 잊었었는데 이제는 기억하는 것 같다. 영우가 신랑에게 블록을 하나씩, 세 번 주길래 신랑이 하나를 숨기며 아직 숫자 개념은 없겠지?라고 했다. 영우가 신랑에게 다시 블록을 달라고 해서 눈 앞에 보이는 두 개를 받아가더니 이어서 또 달라고 끙끙거린다. 아직 숫자 개념을 아는건 아닐테지만 뭔가 기억을 하는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발음은 잘 안되지만 말을 따라하려고 하는게 여간 신통방통한 것이 아니다. 주차해놓은 차 내부가 너무 뜨거워서 뜨끈뜨끈하네 했더니 뜨끄뜨끄한다. 나가서 걷고 싶을 때는 신발을 가리키며 은발이라고 한다. 롤러코스터 블록을 이동시키며 했다 비슷한 소리를 낸다. 나무를 보면 나무 비슷한 소리를 낸다. 이렇게 부모만 알아듣는 말이 늘어나는걸테지.
신랑은 영우를 관찰하면서 인간의 본능과 이성에 대해 알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영우가 새로운 걸 보고 즐거워하는 것, 갇혀있는걸 싫어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구나 싶단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세상 만물에 대해 영우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볼 때 찡한 울림이 있다. 영우가 길을 걷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무엇엔가 귀를 기울이는데 낙엽이 굴러가는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것이었다. 발바닥에 닿는 나뭇가지, 돌멩이의 느낌을 다시 한 번 느껴보기 위해 걸음을 멈출 때, 지나가는 개미나 작은 벌레를 관찰하기 위해 집중할 때 영우에겐 이 모든게 처음 경험하는 것이겠구나 싶다.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에서도 이야기했었지, 세상을 처음 보는 존재를 관찰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세상에 이런 존재가 또 있을까, 영우와 함께하는 그 시간들이 정말 어메이징하다.

격랑

입사하고 두 달이 지났다. 팀에 동년배들이 좀 있어서 티타임하며 부담 없이 수다떨 수 있는 동료도 생겼다. 출장도 다녀왔고 지난 주에는 글로벌 워크샵 덕분에 몇 사람 더 알게 되기도 했다. 이제 겨우 적응했나 싶었는데 다음 주에 발령이 날 예정이다. 분석 인력들을 모아서(구성원 면면을 보면 그다지 분석 인력들은 아닌 것 같지만) 대표님 직속 조직을 만든다고 한다. 이제 좀 정착하고 싶었는데 나의 역마살은 1년 반을 터줏대감처럼 지낸 사람도 흔들어대는건가. 처음엔 개발 사이드로 가는건줄 알고 역시 분석은 어느 회사든 비즈니스와 IT 사이에서 방황하는구나 싶었는데 약간은 전략 <- 여기까지 썼었는데 하루가 지나고 나니 장표 노가다팀인거 같다. 팀장이 될 분도 엄청 빡세 보이고 대표님 직속이라니 고된 나날들이 예상된다. 잘 버텨봐야지. <- 여기까지 쓰고 업데이트를 못한 일주일 사이, 또 변화가 생겼다. 원래는 한 팀에 두 가지 미션이 있었는데 팀장이 될 분이 분석은 함께 못하겠다고 해서 한 가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분석은 기존의 개발 조직 내 분석 파트쪽으로 흡수된다.
지난 일주일간 정말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지금도 여전하다. 이번 건으로 그간 드러내지 않고 혼자 걱정만 하던 것이 다 분출되어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 내가 이 회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원초적인 물음과 이직에 대한 후회, 비전에 대한 불명확, 일정 쪼임에 대한 압박, 잘하고 싶다는 강박,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터지니 너무 힘들다. 거기다 옛날 일이 자꾸 생각나는데, 현대 다니던 시절 12월에 입사했으나 2월에 심신이 힘들다고 싸이에 끄적거렸던 일, 그래서 결국 적응 못하고 10개월만에 퇴사했던 일이 지금 상황에 오버랩된다. 정말 잘 정착하고 싶은데 이번 일만 잘 넘기면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영우 볼 때만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고 매 순간 회사 생각을 하게 되니 너무나 힘든 나날들이다. 

2015년 5월 18일 월요일

447일 고모?

시댁 행사로 모인 김에 형님 댁에 들렀다가 영우와 영상통화를 하게 되었다. 형님들도 고모야 하시고 엄마아빠도 고모 해봐 시켜서인지 영우가 고모 비슷한 소리를 냈다. 이후로도 몇 번씩 고모를 발음하고 있는 것 같은 입모양을 했다. 누군가 단어를 이야기해주면 따라해보고 싶긴 한가보다. 고모 발음과 함께 많이 웃어주고 귀여움 떨어준 덕분에 형님들도 즐거워하셨다.

이로써 영우가 잘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엄마, 아빠, 이모, 그리고 뜬금없는 앰버. 어부, 아니아니, 꿀꾸. 말했다고 우기고 싶은 공, 고모. 

요즘 영우가 집중하는 놀이

영우가 집중하는 놀이 세 가지
1.     컵 쌓기 : 딱 3개월 전에 사주었던 컵쌓기 세트. 꽤 시간이 지나도 무너뜨리기, 양 손에 쥐고 두드리기에만 열중하더니 3개월만에 컵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아빠가 컵 하나씩 내 주며 쌓은 컵을 잡아주는 등 도와가며 연습을 시켰더니 이제는 6단까지 혼자 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차곡차곡 포갤수도 있게 되었다.
2.     미끄럽틀에서 던지기 : 이제 미끄럽틀이 주 놀이공간이 되었는데 영우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기보다는 다른 것들을 던져서 내려보내는데 더 흥미를 느낀다. 자동차가 많아져서 아빠가 보내주시는 동영상에는 자동차 종류와 옷만 바뀔 뿐, 자동차를 던지거나 내려보낸 후 깔깔대다가 빨리 자동차 달라고 찡찡대고 다시 내려보내고 깔깔대는 모습이 반복된다. 매일매일 해도 재미있는지 신기한건지 숨넘어가게 웃는다.

3.     싱크대에 던져 넣기 : 시작은 우유 먹고난 후 빨대컵을 싱크대에 던져넣을때였나보다. 잘했다고 칭찬을 받아서였기 때문이겠지, 그 이후로 물건들을 자꾸만 싱크대에 던져넣는다. 아빠 핸드폰을 들고 주방으로 막 걸어가더니 빈 손으로 다시 나타났을 때의 그 당혹감. 다행히 금방 건져내서 물이 많이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이후로 신발이며, 컵이며, 팽이 장난감이며, 자동차며, 틈나면 싱크대에 던져넣는다. 엄마가 싱크대를 건조하게 관리하는 방법밖에는 대응책이 없어보인다.

444일 갈치 반찬

드디어. 제대로 된 반찬을 먹어본 영우.
그간은 당근, 감자, 고구마 등을 잘게 썰어 넣은 밥과 삶은 당근이나 바나나, 고구마를 반찬 삼아 소고기와 두부, 호박 등을 갈아 만든 국을 먹고 있었다. 이제 간 된 음식 먹여도 되니 어른 반찬을  다양하게 먹여보고 싶은게 내 마음이었지만 아무것도 안하면서 잔소리할 수는 없는 터라 엄마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엄마는 영우 이가 8개 밖에 없어서 잘 못씹을 테니 되도록이면 늦게 먹이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전복죽 먹일 때 못 씹어먹을 줄 알고 전복도 빼고 주신 듯한데 오리도 전복도 잘 먹는 모습을 보아서인지 드디어 갈치를 구워서 먹이셨다고 한다. 아빠가 동영상을 남겨 주셨는데 오물오물 얼마나 잘 먹는지 모른다. 갈치 한토막을 밥 한그릇과 뚝딱한 나영우. 반찬 골고루 먹고 편식 안하는 아이로 쑥쑥 컸으면 좋겠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영우는 평소 목욕할 때 엄청나게 물장난을 한다. 물을 첨벙첨벙하느라 목욕 시키는 사람 옷이 다 젖음은 물론이고 목욕물의 1/3 정도는 퍼 내게 되는데, 이를 잠잠하게 하려면 역시나 장난감이 특효약이다. 목욕할 때는 주로 바가지를 주는데 바가지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물을 담으면 물줄기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린다.

이 날은 엄마가 세수하느라 물을 받고 있는 중이었는데 영우가 그걸 보더니 어디론가 가더란다. 곧이어 바가지를 들고 나타나서는 엄마한테 바가지를 던져주더란다. 잠시 후 바가지를 또 하나 더 들고와서 던져주더란다.  할머니 씻을거니 바가지 가지고 놀라는 것인지, 그 모습을 보고 엄마가 완전 빵터졌다고 하신다. 웃기다.

440일 흙 먹는 아이

영우 처음으로 흙 먹은 날. 흑흑 엄마가 미안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잠이 부족했는지, 영우는 오전 내내 짜증이 좀 섞여 있다. 짜증내는 영우를 달래는 특효약은 외출이지만 나갈 준비를 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옥상에서 신나하며 이것 저것 만지길래 씻길 생각으로 그냥 두었는데 빈 화분을 발견하고는 흙을 쥐었다 놓았다 하며 즐거워한다. 마침 바람도 많이 불어서 흙을 쥔 손을 펼때마다 흙이 날리는 것이 재미있나보다. 그러다 순식간에 흙을 입으로 가져간다. 어찌나 재빠른지 말릴 틈이 없었다. 먹기는 먹었는데 맛이 이상한지 일시 정지 상태. 어휴, 이렇게 엄마 쟤 흙 먹어의 주인공이 된 영우.
오후에는 동촌유원지에 갔다. 유원지 근처의 투썸플레이스에 주차하려고 커피 마시러 갔는데, 카페 내부와 주차 공간이 매우 넓고 작은 정원 같은 것도 있어서 꽤나 좋았다. 영우는 풀과 꽃을 만져보고 뜯느라 정신이 없었고 자갈을 밟으면서 신기해하고 또한 자갈을 맛보기도 했다. 엄마아빠가 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순발력이 떨어져서 막을 수가 없다.

대구에 오래 살았지만 동촌유원지에 가본 적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유원지를 찾은 이유는 오리배를 타려고! 우리가 수영을 할 줄 몰라서 신랑은 오리배를 타는 것을 못마땅해 했지만 유아용 구명조끼가 구비되어 있어서 타기로 했다. 돈을 더 내면 전동배를 탈 수가 있어서 페달 밟는 노가다는 하지 않아도 된다. 30분을 탈 수 있었지만 20분이 넘어가니 구명조끼가 불편하기도, 덥기도 하고, 졸립기도 하고, 지겹기도 했을 것이다. 이리저리 구경시켜 주느라 오후 낮잠 재우기 전에 먹이던 우유를 못 먹였는데 배고파하지 않고 잘 넘어간거 같다. 이 즈음부터 분유와 젖병을 끊고 생우유를 빨대컵으로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제 밥을 좀 더 주고 우유는 줄였으면 싶다. 

2015년 5월 17일 일요일

서울 야경

시댁 행사가 있어서 경기도민이 된 지 보름만에 서울에 처음 나가보았다. 행사가 끝난 후 형님 댁인 일산으로 이동해서 밤 늦게 돌아오는 길. 강변북로를 따라 강 너머를 바라보니 여의도의 야경이 펼쳐진다. 언제부터 서울 살았다고, 늦은 밤 서울을 달리니, 여의도를 바라보니, 왜 이렇게 짠한건지 원.  집에 가려면 고속도로를 타고 가야하는 것이 아직 낯설다.
어린 시절에는 거의 지하철만 타고 다니고, 특히나 밤에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이 없었던지라 처음 자동차를 타고 서울의 야경을 온전히 느꼈을 때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이직도 이사도 지긋지긋해서 이제 분당에 정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서울이 좋은건가, 서울의 야경이 좋은건가. 왜 이렇게 서운한걸까.
대구에서 17년, 서울에서 20년, 이제 3rd stage가 펼쳐진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아온거 같은데 앞으로가 더 괜찮은 날들이면 좋겠다.